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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트너 Mar 18. 2022

파레이돌리아_10

단편소설

오늘 아침 나는 출근하지 않았다. 형님이 골프를 치러 다니 듯 나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갑자기 정근이가 사무치게 보고 싶어 SNS를 통해 흔적을 찾아봤지만 동명이인만 72명이 나오는 바람에 포기하고 말았다. 내내 걸어다니다가 앉을 만한 곳에 등을 한껏 굽혀 초라하게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거의 전부였다. 괴로운 마음에 몸을 부르르 떨며 앉아 있자니 행인들은 귀신 들린 사람 쳐다보듯 경계의 시선을 던졌다. 어쩌면 그 긴 시간동안 귀신에 씌은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혹은 골목에 나타나던 귀신이 나와 우리 가족을 저주하여 고통 속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순간 나는 그곳에 다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첨탑을 올리고 어머니가 국수를 삶으며 고군분투 했던 곳. 귀신을 만나 벌벌 떨며 다리 사이로 손을 집어넣은 채 잠들었던 나의 자리에, 다시 방문했다. 



생각보다 언덕이 높지 않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피아노 학원이 있던 사거리로부터 교회가 있던 우리 집 건물까지 꽤나 가파른 길을 오랫동안 걸어야 한다고 기억했지만 그리 힘든 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긴 시간동안 동네의 풍경은 완전히 바뀌어서 공간을 찾는 일 자체가 무척 어려웠다. 넓었던 길의 갈래들은 남아 있을 것이라 판단했지만 신축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서 버린 그 곳에는 기억 속에 있는 모든 것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발에 흙이 묻거나 나무들이 줄지어 서서 어둑한데 두꺼비가 울고 있는 길 대신 아파트 102동과 203동 사이의 아스팔트 길에서 나는 방황했다. 교회와 첨탑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지점에는 8층으로 지어진 작은 규모의 104동 건물이 있었다. 누군가 외출하며 출입문이 열리는 틈을 이용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통해 7층과 8층 사이 계단참에 서서 작은 쪽창을 통해 밖을 보니 점점 선명해지던 귀신이 나타나던 골목도 무너진 담벼락도 수군거리며 곁눈질하는 이웃들의 시선도 없이 고요한 불빛들만 명멸하고 있었다. 귀신이 사라진 곳에서 어쩐지 솟아오르는 서글픔에 눈물이 얼굴을 타고 내렸다. 정말 이런 모습으로 살 기를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나를 이렇게 만든 그 귀신은 어디로 가버린걸까. 설마 저주가 귀신으로 인한 게 아니라면 앞으로 누구를 탓하고 원망해야 하는 걸까. 견딜수 없는 괴로움에 점차 소리내어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5층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현관문을 열고 나와 계단참에 서 있는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 누구세요?


돌아보니 중학생이 됐을까 말까한 소년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게 용케 말을 건 모습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리가 길었던 소년은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언제든 도망갈 태세가 되어 있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 야.


낯선이의 입에서 함부로 터진 낮은 소리의 반말이 소년을 더욱 움츠리게 했다.


- 채 사이소~!


소년은 두려운 얼굴로 집을 향해 뛰어 들어갔고, 현관문 안 쪽의 공간에서 엄마를 부르는 외침이 아스라이 들려왔다. 나는 아파트를 서둘러 빠져나왔다. 8층은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이제 숨을 천천히 고르며 언덕 아래의 고요한 세상으로 발 길을 옮긴다. 누가 쫓아오거나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녹색, 노란색, 남색 따위의 불빛들 틈으로 어쩔 수 없이 내 몸을 숨긴 채, 그렇게 걸어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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