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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트너 Jun 29. 2024

쇼트의 힘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2023, 조너선 글레이저)

(매우 중요한 스포 있습니다.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읽기를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았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의 찬사 혹은 <탄생>, <언더 더 스킨>을 만든 조너선 글레이저의 작가적 태도 아니면 오스카 시상식에서의 화제성. 뭐든 상관 없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둘러싼 매력의 오라(aura)는 상당할 수밖에 없었고 나와 동지들은 이 영화의 개봉을 학수고대 했다. 사실 그 기대에 비하면 나의 관람은 대단히 늦은 셈이다.


역시나 최고의 영화 였다. 예전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예술 작품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 중 하나는 새로움이다 라고 하신 말이 기억난다. 듣기에는 일반론적인 말이지만 새로움을 품는 것은 역시 위대하고 어려운 성취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보면 몇 가지 떠오르는 작품들이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 업>이라던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정오의 낯선 물체> 같은 영화가 그것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품은 가치도 위대하다. 매우 새로웠고 또 놀라웠다.


마지막 부분의 편집 구성이 백미였다. 영화를 오랫동안 봐왔지만 참 새롭다 느껴지는 구성이었다. 후반부 영화는 홀로코스트 시절의 어떤 순간, 디제시스 속에 있던 시점에서 현재의 다큐멘터리 화면으로 넘어온다. 공간은 지금은 박물관이 된 과거의 수용소다. 그 대단히 일상적인 풍경은 과거의 역사가 현재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는가에 대한 여러가지 인식을 자극한다. 여기까지는 별다를 게 없었다. 뭔가 현재의 풍경으로 과거를 압도하는, 보고 듣는 영화적 경험을 토대로 테마를 담아내는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 같은 작품이 떠오르면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테마가 한 손에 잡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다시 과거-서사-디제시스 속으로 회귀한다. 너무나 충격적이다!


어? 하는 동시에 우리는 영화-서사에서 빠져나왔다가 다시 영화-서사로 잠입한다. 정말이지 쇼트가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구성이다. 사실 처음 현재로 왔을 때는 이미 언급한 <밤과 안개>나 <쉰들러 리스트> 혹은 그 외에 수많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현실 인식 재고를 위한 방편으로 익숙히 여겼다. 하지만 다시 원래의 서사체로 돌아간다니. 가히 충격적이었다.


영화는 쇼트 하나로 과거에서 현재로 서사에서 다큐멘터리로 그 시공간적 성질과 매체 특질을 완전히 뛰어 넘을 수 있다. 영화는 시간에 기대어 있는 예술이고 편집은 그 시간을 활용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화적 성질을 이용해 창작자는 시간을 제공하고 또 속이면서 관객을 능동적 상태로 만든다.


이 영화는 해당 구성을 통해 과거의 악몽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맥락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성찰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 성찰을 가능케 하는 영화적 장치의 힘을 관객에게 일깨워준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시간과 기억에 침투해 역사를 다루는 도구로서의 영화가 얼마나 다양하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충격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전인미답의 구성으로 역사가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영화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복합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는 어째서 우리가 벽 너머를 볼 수 없는지, 왜 소리를 통해서만 구성된 세계를 파악할 파편들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대답을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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