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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트너 Mar 04. 2022

파레이돌리아_08

단편소설

비는 밤새 무섭게 내렸다. 천둥 번개 소리가 앓는 이의 신음 소리처럼 은근히 지속되었다. 날이 밝았지만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만큼 창 밖은 온통 회색이었다. 전날의 방황이 아득한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기상을 미루고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창 밖으로 부터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그야말로 거대한 소음이었다. 머리 위에서 천둥이 친다면 그런 소리가 날까. 그 요란한 소리는 언덕 꼭대기 학교 쪽에서 들려왔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내 방으로 급히 달려오셨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는데 조망이 가장 적절한 곳이 내 방이었다. 나도 까치발을 들고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밖을 살폈다. 처음엔 바라본 광경이 너무 이상해서 뭔가를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만큼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담벼락이 있어야 할 곳에 담벼락이 없었고, 집이 있어야 할 곳에 집이 없었다. 주택들이 늘어선 골목 한가운데에서 산의 능선이 시작하고 있었다. 밤새 내린 폭우로 지반이 약해져 산사태가 발생했고, 돌과 흙들이 쏟아져 엄청난 파괴력으로 학교 담장을 붕괴시킨 것이었다. 담장 아래있던 주택 십여개는 그대로 돌과 흙에 깔렸고 특히 담벼락에 바로 인접해 있던 집 몇 채는 아예 형체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가장 피해가 컸던 주택들의 골목은 강보를 뒤집어 쓴 채 나를 돌아보던 귀신이 나타나던, 바로 그 곳이었다.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다가 부모님을 바라봤다. 즉각 우산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가신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오랫동안 산사태로 엉망이 된 마을 풍경을 바라보셨다. 마치 어떤 이적 행위를 바라보는 듯 어떤 공포와 경탄이 날카롭게 맴돌고 있는 얼굴이셨다. 집들이 사라진 골목에는 귀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사투를 벌였던, 귀신 들린 사내가 살고 있는 집 역시 그 골목에 있었다. 곧 동네 주민들의 비명과 탄식 소리가 들려왔고, 그제서야 아버지와 나는 창가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그 날의 산사태로 동네 주민 5명이 사망했고 11명이 부상을 당했다. 



소란은 곧 잠잠해졌다. 인명피해가 크게 났지만 언론을 통해 보도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언덕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꼭대기 지역의 작은 사태 정도로 생각되었을지도 모른다. 사태가 일어난 당일 난리를 구경하던 이웃들 틈에서 정근이를 보았다. 키가 조금 더 큰 것 같았고 태권도를 열심히 하는지 다리가 굵어진 것 같았다. 비가 내리는 틈 사이에서도 그런 것들이 보였다. 정근이와는 몇 마디 시시콜콜한 대화를 마치고 헤어졌고 이후 그 와의 시간들은 언제나 비슷하게 건조했다.



이제는 귀신도 귀신 들린 자도 사라졌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들이 점차 줄어 들었고, 아버지의 기색은 얼마간 환하고 밝았다. 며칠 뒤 부모님은 한 때 많은 교회 성도님들을 위해 국수를 삶던 대형 용기를 내 방에서 꺼내어 먼지를 닦고 사골을 잔뜩 담아 뼈국을 끓이셨다. 우리 가족은 진하고 고소한 사골 국물을 일주일 동안 원없이 먹었고, 후끈한 온기로 덮인 밥상 언저리는 포근했다. 가난한 산동네에서 천재지변으로 사람이 죽고 다친 끔찍한 사건과 며칠 간 지속된 우리 가정의 안락함 사이에 어떤 관계성 같은 것이 존재했던걸까. 이 맘 때쯤 마음은 불온함과 치졸함 그 사이 어디쯤을 떠돌아다니는 듯 한 없이 위태롭고 가벼웠다. 저주의 기도가 통해서 귀신이 사라졌다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등이 굽은 자에게서 귀신을 퇴치하는 일은 결국 성공했다고 봐야 하나. 결국 기도하는 나에게 정의가 있었고 담벼락 아래 골목은 진정 악의 소굴이었던가. 대단히 잔인한 해방감이었다. 장마가 끝나가 귀신들린 자와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 하고 침을 뱉던 사람들의 경멸찬 시선들은 차츰 사라지고 말없이 우리를 피하거나 일부 적당히 겁에 질린 눈초리로 인사를 건네는 이웃들만 남게 되었다. 밤마다 창 밖을 보는 것은 더 이상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모든 것들이 사소했다. 피를 부르는 그 어떤 일 마저도 골목의 왼편에서 바라보느냐 오른편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첨탑이 높아 보였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게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산꼭대기 동네에서 사는 동안 정의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기준이나 통념같은 것들의 기반이나 내막을 살피게 되었고 금세 쓰러져버릴 사회적 기준들은 그를 따르던 이들에게 악랄한 분노를 심어주곤 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터에서 6년을 더 교회를 운영하며 버텼다. 주일 대예배에 참석하시는 성도님들의 수가 10명이 채 되지 못했을 때, 아버지는 목회를 그만두기로 하셨다. 산동네 대부분의 구역은 재개발 단지로 지정 되었고, 어떤 곳은 벌써 아파트 건설을 위한 공사가 진행되었다. 땅을 더 깊게 파기 위해 설치된 폭탄이 이따금 천둥같은 폭발음을 냈으며, 그럴 때 마다 멀리 떨어진 우리 집 옥상의 첨탑도 부르르 떨며 진동했다.



그즈음, 마침내 우리집은 파산했다. 곧 도망치듯 이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는데, 새로 옮기게 된 집은 아이러니 하게도 지하에 있는 집이었다. 주인은 꾿꾿하게 반지하라고 주장했지만 창을 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꿈치가 보이는 정도의 깊이였고, 빛이 들지 않아 날씨가 맑은지 흐린지 구분이 가지 않는 수준이었다. 마지막 예배를 드리던 날, 대걸레로 열심히 바닥 타일을 닦고 뒷자리에 앉아 설교를 들었다. 그 날 출석한 교인은 우리 가족을 포함해 8명이었다. 우리 교회만 십 년 넘게 출석하신 어떤 권사님은 헤어지는 마당에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훔치시기도 했다. 당뇨로 고생하시면서도 언덕을 올라 고집스럽게 출석하실만큼 믿음이 크고 단단하셨는데 그 원천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궁금하다. 나는 그저 설교 시간에 곱등이 한 마리가 익숙하게 뒷편 구석을 지나다니는 것이 눈에 띄어 힘껏 밟아 죽여 버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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