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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트너 Feb 26. 2022

파레이돌리아_07

단편소설

한 동안 무서운 시간들이 흘렀다. 혼자 있을 땐 주먹으로 벽을 치는 일이 꽤 자주 있었다. 악에 물든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다. 그러나 진정 무서운 일은 몇 주 뒤에 벌어졌다. 지독한 장마가 연일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한 밤에 치는 번개처럼 난데없이 우리 집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이가 있었다. 목회자 댁인 것을 알고 현관을 두드린 여러 불한당들이 존재했지만 그 두드림은 느낌이 달랐다. 위기에 처한 이가 도움을 처하는 절박함 같은 게 전해졌다고 할까. 잠옷 차림으로 문을 연 부모님은 한 밤의 손님과 심각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셨고, 잠에서 깬 나도 문 틈으로 훔쳐봤지만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별안간 정장으로 갈아입고 나오시더니 옆구리에 두툼한 성경책을 끼고는 손님을 따라 집을 나섰다. 현관이 조용해지자 어머니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손깍지를 한 채 기도를 하셨다. 방에 혼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창 밖을 보면 언제나처럼 귀신이 나를 돌아보고 웃고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아침이 다 되어서야 식은땀을 흘리며 돌아오셨다. 입을 굳게 다무신 채 옷을 갈아입으시고 찬물로 샤워를 하신 뒤 곧바로 주무셨다. 화장실을 나오실 때 잠깐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아버지는 그 날 새벽에 있었던 일을 며칠 뒤 예배 설교시간에 풀어놓으셨다. 한 밤의 손님은 일종의 퇴마를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귀신들렸다는 표현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고, 태도가 걷잡을 수 없이 폭력적이고 괴이하게 악화되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까운 교회 목사를 찾은 것이다. 그들은 물론 개신교 신앙과는 일절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귀신 들린 자를 본 일도 없고 귀신 몰아내는 일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모르셨던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기도하자는 생각 하나로 손님을 따라나가셨다고 한다. 장대비 내리는 새벽에 낯선이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집에서 멀지 않은 단층 주택이었다. 현관문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별안간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소름이 돋았고, 순간 너무 무서워서 이제라도 이게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정중히 거절할까 고민을 하셨단다. 그러나 한 켠으로는 기울어져가는 가세와 교회 형편이 떠올랐고 이웃의 어려움을 도와주면 여러모로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하는 판단에 능력을 달라는 짤막한 기도를 한 뒤 집 안으로 들어가셨다.



귀신 들린 자는 왜소한 체구의 등이 곱추처럼 굽은 남성이었다. 오랫동안 씻거나 제대로 먹지 않은 듯 행색이 처참했고 냄새가 났다고 한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 거리면서 바닥을 바라보고 있다가 아버지를 보자 괴성을 지르며 악다구니를 썼다. 머리에 손을 올리고 기도를 시작하자 남성은 고통이 극에 달한 사람처럼 몸부림을 쳤고 그의 가족들이 한 팔씩 붙들고 겨우 진정을 시키는데 나중에는 옷이 다 찢어졌다고 했다. 기도하는 목소리는 시끄러운 외침이 되고 귀신 들린 이의 발광은 심해지는데 붙잡은 가족들은 울고 바닥에는 누군가 흘린 침과 눈물과 땀이 뒤섞여 갔다. 아버지는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 한 시간 정도를 버티고 귀가하셨다. 남성이 지쳤는지 조금 잠잠해지자 서로가 기도의 효과가 발휘되었다 믿기로 하고 자리를 정리한 분위기였다.



가끔 귀신 들렸다던 동네 남자의 정확한 상태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일종의 조현병이나 아스퍼거 장애 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 누가 사실을 정확히 알 수 있을까. 귀신 들린 이웃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어쨌든 발광하던 남성의 뇌나 영혼 속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능력 같은 것이 우리 가족에게 없는 것만은 확실했다. 



소문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퇴마 기도가 큰 효험이 없었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교회를 향해 비난과 조롱의 시선들이 은근하게 날아들었고, 몇 안되던 성도님들 가운데 다시 일부가 교회 출석을 그만두었다. 교회 목사는 아무 권능 없고 말만 많고 정신없는 양반이라는 소문을 성도들 모두가 들었던 것 같다. 귀신 들렸다던 이의 집에서 누군가 피를 보는 처참한 소란이 있었다고 했고, 애꿎은 화살이 아버지에게 날아와 꽂힌 듯 했다. 그즈음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올 때 마다 모퉁이에 모여선 동네 할머니들이 나를 쳐다보며 수근거릴 때가 있었는데, 아무 증거 없이 내 흉을 보고 있다고 믿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초등학생도 그렇게 느낄 정도였으니 부모님의 당혹감은 대단했을 것이다. 선의를 베푸는 마음으로 혹은 부흥을 바라는 마음으로, 무엇이 되었든 그냥 다 같이 잘 되자는 마음으로 새벽 비바람을 감수했건만 처지는 몰락하고, 첨탑을 못마땅해하던 앞 집 여사님을 비롯한 이웃들의 이기죽거림을 애써 견뎌야 하는 꼴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신에게 있는 권능이 그의 뜻을 전하는 이들에게도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지 못하면 모멸찬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게 당연한가. 이토록 얄팍한 개인의 기준이나 감정, 계산 따위로 형성되는 게 믿음이라면 세상에 믿을 사람따위 없을 것 같았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 참 공허했다. 



부모님이 다투는 날이 많아졌다. 안방이나 부엌에서 주로 큰 소리가 났다. 네 탓, 네 탓, 야, 너, 임마, 새끼 따위의 단어가 들려왔다. 깨진 집기들이 늘어났으며 아무도 설거지를 하지 않아 싱크대에는 초파리들이 날아다녔다. 빨래통에도 벗어놓은 옷가지와 양말, 수건 따위가 아무렇게나 쌓여 넘쳐나기 시작했다. 악화된 환경에 예민해진 두 분이 서로를 탓하거나 가치관의 차이를 드러내며 악다구니를 쓰셨을 것이고, 대화로 풀 수 있을만한 일들도 굳이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셔야 했을 만큼 어쩌지 못하는 분노가 쌓이셨을 것이다. 날카로운 외침들은 점점 비명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그즈음 부모님이 두 분 다 외출하신 날이 있었는데, 몰래 안방 문을 열어보니 바닥에 아로나민골드 철제 케이스가 완전히 꽈배기처럼 뒤틀린 모양으로 나뒹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두 분 가운데 누군가 저 두꺼운 철판을 붙들고 마구 구겨댔을 상상을 하니 등골이 서늘했다. 아버지가 만난 이에게 씌워져 있던 귀신이 어느 새 우리 집으로 들러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이라면 퇴마에 성공한 셈 아닌가하며 좋게 생각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말이 안된다 싶을 정도의 분노를 마주하고 있다는 건 꽤나 서글픈 일이었다. 집 안에 있기 싫었던 나는 정처 없이 밖으로 나갔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 해 장마가 유난히 길었던 기억이 난다. 이유 없이 언덕을 계속 올라갔고, 어느 새 숲이 무성한 산길을 걷게 되었다. 등산로 한 가운데에서 울고 있는 두꺼비가 무서워 우회로로 진입했더니 길이 제법 험준했다. 정근이라면 저런 울퉁불퉁한 것 따위 무서워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며칠동안 정근이를 마주치지 못했다. 오락실에 가자거나 집에서 놀자는 연락도 없었다. 정근이의 맨 살에 코를 갖다 박았기 때문일까 생각했다. 참 바보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의 맨 살이 계속 생각난다는 것이 더 끔찍했다. 어쩌면 이 모든 환난은 나의 욕정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분명 내 죄 때문일 거라고 확신했다. 스스로에게 넌 구제불능이라고 타박하며 걷다보니 언덕의 정상에 도착했다. 높은 곳에 이르니 동네가 전부 내려다 보였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우리 교회의 첨탑이 보였다. 별안간 눈물이 터져나와 엉엉 울고 말았다. 애써 청소했던 첨탑이 하염없이 비를 맞고 있는데다 여기에서 보니 첨탑이 실로 높고 우뚝했기 때문이었다.



그 날 밤, 창 밖을 내다보는데 겁이 나지 않았다. 맞은 편 골목에 언제나처럼 귀신의 형상이 있었고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선명하게 나타났고 실루엣은 더욱 밝게 빛났다.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판단도 더 이상 착각이 아니었다. 한 때는 아스라이 명멸하던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눈썹 색깔 마저도 식별이 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기죽거리는 듯한 귀신의 꼴은 점점 밉고 짜증스러웠다. 이 모든 괴로움은 너 때문이라고 속으로 분노하고 저주했다.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이를 갈며 기도했다. 네 탓, 내 탓, 야, 너, 임마, 새끼 따위의 말로 골목의 귀신을 탓하고 밤새 모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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