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를 죽이는 꿈

by PAPERFRAGMENT

빨간색 바퀴벌레 한 마리가 조명 아래 거미줄에 달린 채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분노에 휩싸여 바퀴벌레를 손으로 뭉개버렸다. 그것도 아주 세게, 사람을 죽일 정도로 정말 강하게.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는 밝은 아침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난 곧바로 바퀴벌레를 죽이는 꿈에 대해 검색했다.

"바퀴벌레를 죽이는 꿈 : 현재의 문제나 걱정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상징합니다."라고 나온다.

"참나, 뭐 갖다 붙이기도 편하네, 내가 귀뚜라미를 죽이는 꿈이라고 쳤어도 같은 뜻으로 나오겠지." 실제로 귀뚜라미를 죽이는 꿈이라고 검색해도 문제 해결과 정화를 뜻한다고 나온다.

"뭐야, 그럼 그렇지." 평소처럼 커피포트에 물을 데운 후 에티오피아 원두 20g을 수동으로 간다.

그날따라 손이 떨려 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원두 20g... 물 40g... 쪼르르... 3분쯤 지났나.


"나는 방황한다. 어떻게 보면 항상 방황해 왔는데 요즘 내 뇌 속에서 방황이라는 감정의 비율이 조금 높아진듯하여 난 완전 방황 중이야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면 나는 전이랑 다른 것이 없다. 근데 방황의 감정이 높아졌다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황의 감정이 높아졌다는 것은 내가 방황을 하고 있다는 결론이고 그 방황이 시작됐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 문제는 어디서 온 것이고 나는 누구이고 한편으로는 내가 언제 방황 안 한 적이 있던가 싶기도 하고 문제가 발생해야지만 방황을 하는 건 아닌데 싶기도 하고 방황은 누구나 하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방황이냐 탐구냐 결정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방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즐겼던 것 같은데 갑자기 이제 와서 뭔 방황 탐구 타령이야 정신 차려 방황이나 탐구나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방황할 수 있는 것이며 방황을 건강하게 풀어가는 게 진정한 의미이고 방황이라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고 방황을 해야지만 내가 태어날 수 있는 것이고 방황을 해야지만 내가 완성되는 것이지 않나? 아 방황하지 못하는 존재들이여 불쌍하여라 나는 지금 이렇게 방황하는데 너네는 언제 방황할래? 방황하지 않고 사람 앞에 설 수 있다고? 그건 다 가짜야 방황해야지만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거야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잖아? 난 뭘까? 나는 나를 잘 아는가? 내가 알지 못하는 나는 분명히 있다고 단언하는데 내가 이런 말을 적어도 되나?"


확실히 나는 방황하고 있다. 난 바퀴벌레를 손으로 뭉개버리는 그 손의 악력을 기억한다. 손가락의 힘, 근육의 움직임 모든 것이 기억나며 그 바퀴벌레가 죽었음에도 여전히 쥐고 있는 그 손의 잔혹한 감촉과 손떨림을 난 기억하고 있다. 그런 것들이 나를 무섭게 만들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