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날의 완벽한 다이빙

by PAPERFRAGMENT

3.. 2.. 1.. 삐이익! 무더운 여름날 날카로운 손 끝이 물살을 가른다.


무더운 8월, 내가 5살 하고 6개월이 지난 여름이 한창일 때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스쿠버다이빙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물을 무서워했던 나에게 어머니는 인간이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으셨던건지 물속으로 뛰어드는 인간의 대담함과 그 아름다움에 집중해 봐라고 하셨다.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뭔 소리하는 거냐고 투정을 부렸다. 그렇게 공연은 시작되었고 선수는 4명이었으며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당시 굉장히 유명했던 퍼포먼스 팀이었던 것 같고 선수들은 하나 같이 새하얀 도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나는 어렸기에 정확환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하나 정확히 기억나는 건 4명 전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를 보며 웃지도 않았으며 4명 전부 어딘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지금이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경건한 눈알이었다. 경건함이라는 감정을 알지도 못하는 5살의 나는 경건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4명의 스쿠버다이버 선수가 동시에 점프를 뛰었고 그 4명은 측면에서 보았을 때 한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같은 자세, 템포로 아주 조금의 파동만 일으킨 채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관중석에서는 일제히 기립박수가 나왔으며 이 팀은 무조건 세계를 제패할 것이라고 1등이 될 것이라고 모두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흥분의 도가니로 체육관은 뜨거워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4명의 선수는 물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수영장을 확인해 보았을 때는 4명은 전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나와 어머니는 서둘러 그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빠져나가면서 나는 그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그 경기장은 전면폐쇄 되었고 2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4명의 신원은 파악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 4명의 다이빙은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신문이나 매스컴에서도 "자유를 향해 떠나간 4인" 등과 같은 미화성 기사가 연거푸 나오고는 했다. 실제 그 공연을 측면에서 녹화로 보았을 때 4명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1명이 떨어지는 것처럼 정확한 관절의 움직임과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모든 것이 연습에 의해 맞춰진 것이 맞추려고 하지 않은 일종의 당연한 것으로 보였다. 무언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같은 마음으로 점프한 느낌이랄까. 사실 1명이 뛴 건데 우리는 4명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거기 서있던 4명의 형체들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스쿠버다이빙은 하나의 공포스러운 스포츠가 되었고 다이빙을 한 후 물 밖으로 나오는 행위 자체가 두려움을 타파하는 것으로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잘 파악한 어느 회사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준다, 당신은 일어설 가치가 있다 등 뭐 이런 슬로건을 내고는 8미터 정도 되는 높이를 로프를 매달고 뛰게 하는 산업도 생겨나고는 했다. 그것도 잠깐이긴 했지만.


"엄마, 어쩌면 그때 그건 하나의 쇼 아니었을까?" 내가 물었다.

"자유를 찾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이나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어떠한 자극적인 콘텐츠가 필요했던 것이지, 원래 그런 자극적인 콘텐츠는 예상치 못한 것에서 와야 효과가 더 하잖아. 누가 스쿠버다이빙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겠어." 내가 이어서 덧붙였다.

"그러게다. 그래도 너는 그때 이후로 물을 좋아하게 되었잖아. 그 다이빙이 아름다웠긴 했지, 엄마도 아직까지 잊을 수 없어 그 장면은." 엄마가 웃으며 이야기하였다.

"맞아, 그 다이빙은 정말 아름다웠어."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상상했다.


나는 이제는 물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어머니의 의도가 전해진 듯 이제 나는 물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물속에서 시간을 보낼 때 난 아직까지도 그 4명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고는 한다. 어릴 때는 물속에 오래 있다 보면 그 진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잠수를 엄청나게 연습했었다. 하지만 1분이 지나도 4명은 나타나지 않았고, 코 속으로 물만 들어가 애만 먹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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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초등학생 때 나는 기이한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이라는 건 잊게 되는 것이고 충분히 잊을 수 있는 것인데 잊지 못하는 꿈이 하나씩 있다. 그런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꿈이 우리를 곤란하게 만든다. 잊지 못하는 그 꿈은 내가 공중화장실 변기 속으로 스쿠버다이빙 선수가 다이빙할 때 취하는 포즈로 쏙 들어가는 꿈이다. 나는 변기 앞에서 정확하게 내 몸을 일자로 만든 후 점프를 뛰고 좁은 변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 들어가게 되면 나는 어떠한 괴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 괴물들은 나에게 불타고 있는 돌덩이들을 던지고 나는 무서워하며 도망가는 꿈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지금은 공중화장실로 다이빙하는 그 장면을 묘사하면 생각보다 웃음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친구들에게 내 꿈에 대해 묘사하고는 한다. 뭐 어쨌든 나는 이 꿈을 살면서 3번 정도 꾸었다. 재밌는 건 꿈을 계속 꾸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내게 돌을 던지며 다가오는 괴물은 총 4마리였다. 그 4마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난 더 이상 그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4마리는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었으며, 이곳은 오면 안 된다 경고하는 것일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냥 아무 의미 없을 수도 있다.

이따금씩 나는 20년 전 그 다이빙 영상을 찾아보고는 한다. 어딘가를 바라보고 응시하는 그 4명과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다이빙, 그리고 약간의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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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마리가 나에게 준 메시지는 아무것도 없다. 그냥 돌을 던진 것뿐.

나는 그 다이빙이 주는 시원한 자유를, 그 파동이 주는 여운을, 움직임에 대한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낀다.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 뛰어내린다. 무더운 여름날의 완벽한 다이빙은 그렇게 완성된다.

그 4명은 아직 내 마음속에서 다이빙하고 있을까. 나는 가끔씩 그들의 시원한 다이빙이 그립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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