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과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것은 무게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자면 과학자는 무언가를 기록할 것이고 소설가는 무언가를 적어 내려갈 것이다. -나는 소설가는 아니지만- 소설가는 어느 정도 바보 같은 면이 있다. 같은 것을 보아도 이야기로 치환시키려고 한다. 치환하는 과정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의식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는 의식과 무의식의 괴리, 사회적인 나와 음침한 나 사이의 싸움, 인간적인 면모와 비인간적인 면모등을 고려하며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항상 길을 잃는다. 그래서 완성시키지 못하는 병에 걸린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가? 나의 문장에는 알맹이가 있는가? 윤곽이 그려지는가? 내가 전달하려는 의미는 픽셀화 되어있다. 선명하지 않고 그저 색감과 형체만 유추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남아있다. 두뇌회전이 빠른 똑똑한 사람은 그러한 의미가 선명하게 정해져 있어 앞서 말한 과정이 필요 없다. A는 그저 B이니깐. A는 B인 것이고 B는 A라는 사실을 변하지 않으며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안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게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표현을 쓴다. 슬프지만 나는 뭔가를 기록해 본 경험이 없다.
속된 말로 나는 말을 싸지른 후 발췌하는 작업을 한다. "이건 말이 괜찮은데?" "다시 보니깐 이건 좀 표현이 오그라드네" "이때 내가 뭘 말하려고 한 거지?" 아무래도 기록일 수가 없다. 나는 바보 같은 면이 많아 말을 정리해서 딱 전달하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항상 말을 도화지에 뱉어낸 후 거기서 하나씩 주워서 전달한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바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어려움이 있다. 그 어려움에는 불필요한 배려도 있었을 것이며 용기도 필요했을 것이고, 사회적인 나의 위치도 생각을 했었을 테다. 가끔은 그런 과학자 같은 똑똑한 두뇌 회전을 부러워하고는 한다. 기록할 수 있는 삶. 지금 내가 적은 이 글도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시금 나는 길을 잃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적어 내려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