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by PAPERFRAGMENT

독후감을 써보겠습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개인적인 독후감 말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4번 읽었습니다. 4번이나 다시 읽을 정도로 재밌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에세이를 4번이나 읽는다는 것은 재미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불을 개세요."

"매일 1줄이라도 좋으니 일기를 쓰세요."

"젊은 나이에 여행을 떠나세요, 그때 아니면 갈 수 없습니다."

위와 같은 말들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종종 이런 어투의 서적들이 베스트셀러로 등장하고는 하는데 속으로 어떻게 저런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안 불편한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기 기준이 없나? 의 의문까지 간 적도 있습니다. (뭐 베스트셀러라면 제가 잘못된 것이겠지만요)

남이 하는 말이나 조언보다 내가 스스로 느끼는 생각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이기적인 저로서,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있는 것이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특히 남이 생각하는 가치관을 알려주는 서적을 읽고 있으면 진짜 죽을 맛입니다.(아 어쩌라는 거야, 넌 그렇겠지, 아 뭐래 랄까)

뭐 어쨌든 이러한 명제들은 틀린 것도 맞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표면 위에 놓여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니 놓여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상태 그대로 놓여있을 때 가장 완벽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아래나 좌우로 옮기려고 하는 순간 대부분 삐끗하게 됩니다. 나는 위로 옮기려 했는데 너는 아래로 옮기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그대로 두는 게 최선입니다. 건들지도 말고 그냥 그 상태 그대로. 전시장에 놓여있는 초고급 작품처럼 대해야 하는 예민한 것입니다. 제가 예민한 인간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저는 A=B라는 공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고로 A=A가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냥 A는 A인 채로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약속시간 전, 서점에서 에어컨 바람도 쐴 겸 책들을 구경했습니다. 우연히 들어가자마자 바로 눈이 마주친 책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사물과 인간이 눈이 맞는 감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빈티지샵 옷무더기에서도 눈이 맞는 순간이 있듯이 서로 연결되는 순간 같은 거 말입니다. 그러나 눈이 맞긴 했어도 제목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뻔히 소설가의 역량이나 소설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이런 쓸데없는 것이나 적혀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알고 있기에 이 사람이 풀어내는 소설가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이 사람이라면 직업으로서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라고 할까. 예민한 내가 기분 나쁘지 않게 이 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받아들인다면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나를 다시 한번 믿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눈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방향은 그 무엇도 맞다고 하지도 않으며 그 무엇도 틀렸다고 하지 않습니다. 책의 내용은 전부 자기 자신을 향해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도로 속 많은 차와 길들이 있지만 그것의 목적지는 전부 자기 자신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하는 화살표는 다 자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소설가로서 어떻게 해야 하고 이런 것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뭐 잠깐 이야기가 나오긴 합니다만 중요한 핀트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가장 본질적인 이야기는 삶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제목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소재일 뿐이고요. 이것이 이 책을 3번 읽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책에 나온 문장들이 너무나 나를 관통하여서 벌거벗겨진 것 마냥 부끄럽고 웃겼습니다. 신선한 감정이었습니다.


영어에 'epiphany'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직감적인 진실 파악' 정도가 됩니다.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라는 뜻입니다.

이 책을 사는 순간 어쩌면 저는 'epiphany'를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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