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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뮈 Oct 21. 2017

친애하는 나의 화장실

 배변훈련을 하는 아이들 중에는 자신의 응가에게 인사를 한다던가, 변기로 응가가 빨려 들어가는 것을 슬퍼해 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응가는 우리 몸에서 나온 덩어리 중에서도 가장 크다. 신체에서 나오는 여러 형태의 분출물 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매일 보지 않으면 굉장히 찝찝하다. 이렇게도 중요한 응가, 똥을 만나는 화장실의 쾌적함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굉장히, 몹시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자다가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항상 꾸는 꿈이 있다. 재래식 화장실에 똥을 손으로 만져야 한다던가, 화장실로 들어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거나 하는 꿈이 대부분이다. 이는 아마도 내가 어렸을 적부터 깊이 간직해온 화장실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듯하다. 똥꿈에 대한 해몽을 보면, 돈이 들어오거나 그간의 노력이 재물이 된다는 해석이 많은데 꿈 해석이 맞았다면 나는 이미 튼실한 중소기업을 소유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 뿌리 깊은 공포는 경험에서 만들어진 거라, 계속해서 냄새나는 꿈에서 못 참겠다 싶을 때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몇십 년의 삶을 더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시골집 화장실은 배설물을 받아두었다가 통이 다 차면 특수차(똥차)가 와서 거둬가는 방식이었다. 똥차를 부르기 애매하지만, 많이 차있는 상태에서 응가를 하는 일은 늘 조마조마했고, 허름한 화장실 건물에 비가 들이쳐서 통에 물이라도 차는 날에는 등교 준비가 지옥에 가까웠다. 가장 싫었던 건, 돌이든 밤송이든 아무리 막아도 돌아다니는 쥐들이었다. 배변활동 중에도 쥐가 나오면 잽싸게 수습하고 밖으로 소리 치르며 뛰쳐나온 일이 셀 수 없이 많다. 올해 수세식 변기를 설치하기 전까지도 아빠는 쥐가 무슨 죄가 있냐며, 바퀴벌레 한 마리 죽이지 않을 거 같은 동물 애호가 같은 말을 했다. 자신의 무능과 체념한 삶에 대한 변명이었겠지만, 나는 그 말에 웃지도 울 수도 없었다. 엄마는 수세식 변기에서 처음으로 볼일을 본 뒤 눈물이 고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화장실이 이렇게나 중요한 공간이다. 아마 화장실만 좀 더 쾌적했어도, 나는 지금보다 더 둥글고 무난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것이 충족이 되지 않으면 사소한 것부터 뒤틀리는 게 사람이지 싶다.


 물론 재래식 화장실에 좋은 점도 있었다. 수세식 변기에서 대소변은 참 쉬운 일이다. 그냥 흘려보내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재래식 화장실에서는 대소변에 대한 철학적인 사고까지 가능하다. 다섯 식구가 만들어내는 대소변이 차고 비워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엄청나게 먹고 싸는 일에 여러 가지 생각이 끼어들곤 했다. 지구의 입장에서 사람을 보게 된다던가, 인류의 대소변의 역사가 궁금해진다던가, 혹은 인간의 신체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든다던가 등등등. 쓸모없지만 때로는 유용하기도 한 질문들이 생기기도 했었다.


 침대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여섯 걸음 정도 걸으면 화장실이라, 출근 준비하는 J의 다양한 소리로 잠에서 깨곤 한다. 화장실이 고시원 평수보다 다소 큰데, 큰 평수 때문인지 소리가 더 울리는 느낌도 있다. 라꾸라꾸 침대를 넣도 될 정도인데, 간이침대 대신에  속옷과 양말을 넣는 용도로 이케아 2단 서랍장을 놓았다. 같이 살면서 방귀도 트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와 J는 자연의 소리를 트고 지낸다. 처음부터 J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바람에, 나도 서서히 생명의 소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뿜 뿜 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침마다 뿌지직, 탕탕, 퐁, 치-익 하는 소리를 듣는 일이 처음부터 편했던 건 아니지만 지금은 이런 소리에도 늦잠을 잘 수 있다. 화장실이 두 개라, 따로 쓸 수도 있는데 굳이 정해놓고 쓰지는 않았다. 따로 쓰면 적절한 환상이 있는 사이가 되었을 텐데,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다.


201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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