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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뮈 Oct 21. 2017

청소가 있는 풍경

사소하게 작은 일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집 안에 전구가 하나 나갔다거나,  그릇에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얼룩이 생겼다던가 하는 일부터,  약간 긴 손톱이 거슬려서 하던 일에 집중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오늘이 그랬다. 약 2주 전쯤, J의 출근용 차에 경고등이 들어와서 수리 견적을 낼 겸 대리점에 다녀왔다. 수리비가 무려 1750$+TAX 가 청구되었다. 2009년식 중고차라 팔아도 큰돈이 나오지 않는데, 수리비만 2000$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큰 고민을 하지 않고, 그 차를 바로 대리점에 팔기로 하고 협상도 없이 딜러가 제시한 가격에 거래를 했다. 1주면 들어온다고 한 돈이 2주째 오지 않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오늘은 급기야 대리점에 온갖 방법을 통해 연락을 해보기에 이르렀다. 미국식 일처리는, 지금까지 살아본 바로 자기 담당업무가 아닌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든 물어보면 대답하겠다는 채팅과 문자서비스는, 회계부서에 연락하는 게 빠를 거라 하고 제 할 일이 끝나고 또 회계부서로 연락을 물어물어 하면 담당자가 없고 메시지 남기라는 뭐 이런 식. 큰 대리점이 사기야 치겠냐만, 항의 전화 한 통에도 손에 식은땀이 흐르는 외국인으로서는 여간 애가 타는 일이 아니다. 팔아버린 차 생각으로 산만한 오전 나절을 보내버렸다. 당장 필요한 돈도 아니고, J가 주변 사람의 도움을 통해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도 괜스레 걱정이 돼서 쓸데없는 힘만 썼다.  


아직 대금이 들어오지 않은 그 차는 4년 정도 타면서, 내부 세차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루는 차 위에 뽀얀 먼지가 쌓여있었는데, 바람에 날리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내버려 둔 적도 있다. J가 차 안팎에서 먹은 먼지가 꽤 많았을 거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늙어가고, 사물에는 먼지가 쌓여간다. 사물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일은 인간이 평생 해야 할 숙제 중에 하나일 것이다. 청소는 지겹게 반복되고 보람을 느끼기도 힘들지만, 하지 않으면 시간을 눈으로 가늠할 수 있는 성가시기가 이루 말하기 힘든 고된 작업이다. 집을 꾸민다는 건 청소를 성실하게 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을 값어치는 돈으로 환산하면 보잘것없지만, 이는 정말 터무니없는 노동착취다. 집에서의 일, 청소를 포함한 많은 것들은 더 소중하게 여겨지고 대우받아야 마땅하다.


애초부터 청소에 대해 이런 존경 어린 시선이 있지는 않았다. 대학 입학 전에는 엄마의 노동을 당연시 여기며 게을리 살았고, 사회에 나와서는 환경미화원들의 노고를 특별히 고맙게 여기지 않았었다. 나의 집이 생기고 그 집을 꾸리기 시작하니 청소라는 게 생각보다 거대한 일이라는 걸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사는 일은 끝없이 쓰레기 혹은 먼지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더러운 것을 내가 치우느냐, 남이 치워주느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뿐이지 그냥 내버려두고 살 수는 없다. 내가 힘들어봐야 남이 힘든걸 겨우 아는 어리석은 인간이라, 서른이 넘어서야 이제 내가 싼 똥은 내가 최대한 치우고 살자는 삶에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온갖 쓰레기와 더러움,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을 표현하기에는 똥보다 적합한 단어가 없는 것 같다.)


변기에 대해서 이어서 말하자면, J에게 두어 번 앉아서 소변을 볼 것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내키지 않고,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을 것 같다고 해서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보다 나은 설득을 위해 인류의 화장실에 역사를 찾아보고, 실제로 남자가 앉아서 소변을 봤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는지를 열심히 검색해보긴 했다. 덕분에 고대에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다 같이 대소변을 보는 일이 사회적인 활동이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고, 여자가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이 당연했던 역사의 순간이 있었다는 잡스러운 지식이 생겼다. J가 앉아서 보는 소변이 내키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것이 남성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는 '자존감'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차마 건들 수가 없었다. 반드시 서서 소변을 봐야 한다면,  일처리 후 커버를 내리거나, 소변이 튀는 부분-변기 뚜껑과 본체 그리고 주변까지- 깨끗하게 닦았으면 좋겠다. 청결함에 대한 기준이 각자 달라서 강요할 수는 없지만, 나는 정말로 J 가 그렇게 해 주길 바란다. 그런 청소를 덜기 위해서라도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게 제일 나은 선택일 텐데!  결국 노란 흔적을 참지 못하고, 나는 오늘도 물티슈와 청소용 고무장갑을 꺼내 든다.  


 물이 닿는 곳을 위한 청소에 꼭 필요한 세 가지는 베이킹소다, 구연산, 식초이다. 샤워룸 벽에 물때를 팔이 아프도록 솔로 벅벅 밀고 나면 말끔해진 타일을 계속 보고 있고 싶다. 가벼운 먼지는 Dust wipes라는 성능 좋은 만능 티슈로 슥슥 밀고, 세균이 걱정되는 곳은 Disinfecting wipes로 자주 닦아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기를 밀면,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만큼 먼지가 나온다. 먼지를 버리고, 청소기 필터를 씻기 위해 물을 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쓰레기봉투가 가득 차 있고, 분리수거를 하러 아파트 단지 지하에 갔다 온다. 이런 일을 매주, 매일  반복하는 생활이다. 집에 쓰레기를 두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몸이 아파도 쓰레기를 버리고 온다. 타고난 성격에 따라 살자면 J가 내 성격으로 바뀔 리가 없으니, 집안일을 도맡아 고생을 사서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래서 팔자는 거스를 수 없다고 하는 건가. 아, 깨끗한 집이 좋으면서도 몸이 힘들고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쓸고 닦나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청소로 몸이 지치고 나면, 무언가 사고 싶은 욕구가 솟아난다. 어김없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 상을 받고 싶어 져서, 스스로에게 아주 자비롭게 선물을 해준다. 사서하는 고생-소비의 악순환의 반복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깨끗함의 유혹에 나는 오늘도 청소 물티슈를 꺼내 들고 세면대를 닦는다. 모든 일이 적당히 하는 게 어렵다. 적당히 사랑하는 것, 적당히 청결한 것, 적당히 먹는 것 등등. '열심히' 보다 '적당히' 가 더 어렵다는 걸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자주 느끼고, 생각한다. '적당히' 하려면 나를 비롯한 밖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훨씬 더 어려운 기술이다. 나의 온전한 좋음을 추구하기보다 적절한 선에 모두의 괜찮음이 필요한 순간들이 생긴다.


201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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