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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뮈 Oct 21. 2017

시작의 가을

가을이 왔다. 여름이불을 덮고 자다 보면 새벽녘에는 몸이 으슬으슬 추워, 담요를 한 겹 더 덮고 자다가 지난 주말에 두꺼운 이불을 꺼냈다. 오늘에서야 미뤄두었던 여름이불을 세탁기에 돌리고, 건조기에 말린다. 빨래 건조기 소리가 시끄러워 소음 제거 헤드폰을 끼고 소파에 앉아서 글을 쓴다. 의사가 지어준 두 달치 약을 다 먹고, 이제 남은 두 달은 기넥신과 영양제만 먹는다. 왼쪽 귀가 잘 안 들린 지, 어느새 반년 째로 접어든다.


 집은 천국이 될 때도 있고,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 될 때도 있다. 둘의 공간이 작은 거 하나까지도 소중한 유산이 되는 순간과 지겹고 벗어나기 힘든 굴레같이 느껴지는 순간. 두 개의 간극은 멀지 않은 사이를 유지하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젯밤에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멜라토닌을 먹고 잠을 자려고 했다. 몸에 호르몬이 깊게 영향을 주지 못했는지, 새벽에 엄청 뒤척였다. 녹슨 채로 방치되어 시간에 제 살이 드러나는 철근처럼, 관계는 으스러진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사이를, 오랫동안 힘겹게 끌고 온 느낌이다. 보채어 노력하라고 말하는 게 힘겹다. 가족이기 전에 연인인 사이를 유지하는 일에 버거움이 생일 즈음에 터져버리는 일도 슬프지만 새삼스럽지 않다. 그저 화를 내기에도,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열 없는 마음의 흔적이 기억에없이 흘러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부엌은 각각의 것이 어울리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지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들의 쓸모가 합쳐져 한 끼 식사가 된다. 오늘 여행은 가장 아끼는 꽃무늬 접시를 보는 걸로 충분할 것 같다. 각각의 쓸모와 조화에 대해서는 다음에 얘기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2017/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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