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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뮈 Oct 21. 2017

소파에 누워 사피엔스

여름 같던 날이 그새 좀 추워졌다. 비도 자주 오고 구름 낀 날이 계속된다. 저번 주에 다 읽는 걸 목표로 했던 책 '사피엔스'는 어제야 반을 조금 넘겼다. 후속작 '호모 데우스'도 남아있는데, 반납이 차일피일 미뤄져 책 주인 수 언니에게 미안해진다. 유발 하라리의 책은 읽을수록 인류는 죄와 모순덩어리이고, 그동안 알고 믿었던 모든 것들에 의심의 칼을 들이대는 피곤함에 머리가 아프다. 그런 날카로운 문제제기에도 웃음이 나는 문장이 있긴 하다.

요약하면,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 앞에서 쩔쩔맨다. 이신론은 악을 설명하지만 질서 앞에서 당황한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논리적인 방법이 하나 있다. 온 우주를 창조한 전능한 유일신이 있는데 그 신이 악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앙을 가질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역사상 아무
도 없었다.         -p314                                    



껄껄, 그런 배짱 있는 사람 만나보고 싶다. 하지만 산 자로써, 악한 신을 전능한 신이라고 믿고 살 수 있는 이는 정말로 찾기 힘들 것이다.  살기 위해서라도 종교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는 일이 너무 어렵다. 착한 신을 믿기에는 세상이 너무 잔인하고, 악한 신을 믿기에는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고. 종교 없이 어정쩡하게 계속 줄다리기를 하면서 사는 것이 나의 운명인가 싶다. 책을 읽고 있으면 집이 아득하게 넓은 우주가 된다. 몇 번을 해도 질리지 않는 경험이다.


집에 있으면서도 늘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책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고,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끊임없이 세상의 소식을 둘러보고. 내 안으로 시선을 돌리면, 괴물 같은 심연을 볼까 두려워 밖을 쳐다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온전한 개인이 되라고 모두가 말하지만, 허상을 쫓는 것만 같다. 나는 어디에, 고정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으로 변하고, 행동하면서 확인받는 개인이 있지, 존재 만으로 완전한 개인은 사회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니, 사는 것이 고행인 것인가!)


소파에서 제일 많이 하는 일은, 먹고 눕는 것이다. 식탁이 있지만, 텔레비전 보는 각이 나오지 않아 소파 앞에 다소 높은 커피 테이블에 밥과 반찬을 두고 쭈그려서 먹다가 다 먹으면 소파에 퍼질러 앉는다. 배부르고 편한 제일 좋은 순간이다. 혼자 밥을 먹을 때 텔레비전을 보는 게 습관이 돼서 둘이 먹을 때도 꼭 뭔가를 본다. 다섯 식구가 밥을 먹었을 때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도 서로 할 말이 많아서 그런지 심심하지 않았는데. 식사와 텔레비전이 한 세트가 되어버린 익숙해진 일이 갑자기 낯설어진다. 식구가 늘어나면 텔레비전을 안 보게 될까? 아이가 있으면 편하게 밥 먹을 시간도 당분간은 없어지겠지. 그리고 겪어보지 못한 다른 종류의 고통과 기쁨이 따를 것이다.  


그래도 요즘에 스스로 기특한 것이, 주변에 임신과 출산 소식에 담담해져서 마음이 크게 쓰이지 않는 점이다. 집을 찾아보다가, 평생 빚쟁이로 살 거 같은 불안에 아이를 완전히 포기하고자 하는 보다 더 확고한 마음이 들었다. 경제적 불안을 굳이 넘겨주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의 세상이 꼭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이미 J에게 아이 없이 사는 것에 대한 의견을 밝혔고, J는 그래도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 몸도, 경제적인 상황도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내 그릇이 엄마가 될 만큼인지 모르겠다. 이번 달은 생리기간과 생리혈의 양까지도 예민하게 신경이 쓰였다. 생리가 끝나고 오는 짧은 평화를 만끽하고, 다음 생리 전에 찾아오는 여러 증상들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세상에도, 내 몸에도 참 평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파에 부드러운 감촉의 담요를 덮고 몸을 뉘이는 순간만은 모든 게 잠시 괜찮다. 이 괜찮은 순간들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게 많아도, 또 내일은 내일의 일을 해야 해도.   


긍정과 낙관에 허덕이지 않으면서 차가운 머리로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고 사는 방법을 알고 싶다. 너무한 긍정도 부정도 독이 되는 세상에 차갑게, 적당히, 묵묵히. 괜찮은 어른이 되기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은 자가 결국 이긴다는 말 또한, 일면 진실에 닿아있는 것 같다.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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