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즐거움 중에 하나는 단연, 택배를 기다리는 일일 것이다.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해 거물로 성장한 아마존이 홀푸드마켓을 인수한 것만 봐도 온라인 쇼핑의 세계가 얼마나 큰 파이인지 짐작할 수 있다. 집에 들고 나는 무수한 물건 중에 9할은 아마존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프라임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로는 필요해서 사는 물건도, 필요하지 않아서 사는 물건도 많아졌다. 한국처럼 2-3일 내에 택배를 받을 수 있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물건을 빨리 받기 위한 추가 요금도 많이 붙고 영업일 기준으로 길게는 열흘까지 기다려야 기본 배송으로 주문한 물건을 받을 수 있다. 기본 배송은 거의 5달러를 지불하는데, 한국처럼 가구 같은 것이 아닌 평균적인 물건의 배송료가 2500원인 것에 비하면 2배 이상으로 비싸다. 그래서 차라리 아마존 프라임으로 빠르게 물건을 받자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상당히 논리적인 비약이지만, 이틀 내로 물건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하고 나자 이제는 포기할 수 없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소파에 조용히 앉아있으면 아파트 복도에서 바코드를 찍고 유유히 사라지는 배달원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배달원이 사라졌을 즈음 문을 빼꼼 열고 물건을 집으로 들이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가끔 가을의 다람쥐들처럼 비축식량으로 도토리를 땅에 묻어두고 찾지 못하는 것처럼, 필요를 가장해서 구입한 물건들을 까먹기도 하지만. 어제는 고민 끝에 산 다이슨 청소기를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배달원의 발걸음이 멀어지기도 전에 문을 열고 잠옷을 입은 채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두 달하고도 보름이 지나면,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있게 된다. 하루를 보내는 건 아득한데, 달력으로 남은 날짜를 헤아리다 보면 조급한 마음이 든다. 집 안에 들어왔다 나가는 많은 물건들이 소소한 그리움이 될지도 모른다. 특히 잔고 걱정 없이 먹는 아보카도와 바나나를 비롯한 다양한 과일들과 밥 대신 먹었던 오트밀, 좋은 품질의 스테이크용 소고기가 없다는 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조금 허전한 일이 될 것이다. 미세먼지 없던 공기도 그리워하게 되겠지. 무엇보다 질 좋은 공기와 지루하기까지 했던 여유가 애틋하고 아득한 미국 생활의 그림자로 남게 될 것 같다.
날 것의 마음이 말로 나오면 틀이 생기고, 그 틀이 정말로 내 마음의 모습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두렵다.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아이에 대한 고민을 할 때도 그랬다. 아빠에 대한 차갑고 어두운 기운의 글을 쏟아낸 날, 아빠에게 몸도 마음도 아프지 말고 지내고 있으라는 문자를 받았다. 분노를 토해낸 나의 글이 싫었지만, 말과 마음에 대한 어그러진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지우지 못했다.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은 가슴속에 묻고 살아가야 할 순간이 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스스로 틈을 주지 않으면 아픔이 모든 걸 잠식해버린다. 내가 나에게 해온 고문을 또다시 하지 말자는 다짐이, 또 잠시 무너졌다. 나는 자라서 내가 된다. 겨우, 이만큼 내가 되어도 무너진 탑을 다시 만들어가며 매일을 산다.
귀에 통증 때문에 미뤄두었던 밖으로의 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사 온 약도 다 떨어졌다. 웅웅 거리는 왼쪽 귀를 약 없이, 보살피며 사는 일이 겁이 난다. 하지만 더 이상 잘 들리지 않는다고 집 안에만 있을 수는 없다.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장소여야 한다.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문을 열고 나가려 한다. 귀도 괜찮아지고, 일자리도 모든 게 수월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대로 다른 문을 두드리면서 그 날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