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이 말했듯이
빡빡하게 들어선 아파트 숲에서 밤은 불이 켜진집과 켜지지 않은 집을 헤아리는 일이다. 각자의 사정으로 매일 밤 다르게 켜지는 불빛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어느 날 밤이었다. 달포 하고도 보름 전쯤이었는데, 서촌 궁중 족발집 사건에 대한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어떻게 살아왔길래, 타인을 돈이라는 이유로 저리도 역겹고도 흉악한 솔직함으로 사지로 내몰 수 있는 괴물이 될 수 있었을까. 안락한 집을 벗어나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괴물인 자와 아닌 자를 구분해 낼 수는 있는 것일까? 나는 이 불합리함에 그저 탄원 서명을 하고 멀찍이 바라보고만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절망은 어느새 더 크고 깊게 자라나 있다. 싸움은 이 기기 위해 하는 건데, 무엇을 이기기 위한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건지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 기분이랄까. 세상 돌아가는 일이 쉬이 읽히질 않으니 답답하다.
중요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조금 덜 신경 쓰이는 일이 되고, 새로운 공간에서 다른 규칙을 만들어간다. 예를 들면, 이전 집에서는 변기커버가 엄청 중요한 요인이었는데 지금은 아무거나 갖다 놔도 그럭저럭 쓸 거 같다던가 예전에는 빨래를 그렇게 꼼꼼하게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빨래의 향, 섬유 유연제의 종류도 몹시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던가 뭐 그런 하찮은 것들이 있다. 조금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요즘 나는 타인에게 그다지 관심이 있지도 않고 관계를 엄청 중요한 문제로 여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힘을 빼고 천천히 흘러가고 싶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고, 적당한 일을 하고 그냥 그런 것에 만족한다. 오늘은 수화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혼자 있어도 재밌다가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