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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뮈 Jan 29. 2019

방탄소년단

소심한 팬의 미주알고주알 


2016년 NY KCON에서 방탄소년단을 처음 봤을 때, 무대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로 소녀들의 크고 높은 함성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때는 미국 생활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이었고, 한국방송과 미국 방송을 애매하게 보고 있던 터라 유행에 전혀 민감하지 못했었다. 그 사이 이렇게 유명하고 인기 있는 음악을 놓치고 있었다는 뒤늦은 자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처음으로 방탄소년단 음악을 찾아들었었다. ‘불타오르네’는 그냥 그때의 나에게는 10대들이 듣는 데시벨 높은 음악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라는 말은 주변을 보면 꽤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이제껏 나는 여러 보이밴드를 비롯해서 다양한 음악가들을 좋아해 왔지만 덕질이라고 할만한 것은 해본 적이 없었다. 어떤 음악이든 사람이든 미쳐버린 수준에서 좋아한 것은 기억에 단 한 번도 없다. Backstreet Boys를  이상형처럼 좋아한 적이 있었고- ‘ As long As love me’는 그 시발점이 된 트랙이었음, 영어공부의 흥미도 되고 여러모로 도움이 됨- 신화의 박력 터지는 ‘Brand new’ 나 인피니트의 ‘내 거 하자’ 류의 갈구하는 남성을 대변하는 음악에서 매력을 느끼기는 했지만, 끈질기게 좋아한 멤버가 없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 와서, 방탄 입덕 부정기와 간헐적인 덕질을 거쳐 꿈속에서 [naughty] 한 바람까지 드러낼 정도가 되었다니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다. 작년에 티켓팅을 실패하고는 일주일 간 삶의 의욕도 없었다. 꾸역꾸역 담아온 마음을 담아 기어이 박지민에게 팬레터를 쓰기에 이르렀고, 방탄소년단 영상을 볼 때는 주체할 수 없이 입꼬리가 올라간다. 통제불능의 상태가 된 것 같다. 


좋아하게 된 본격적인 시점은 프듀 2에서 ‘상남자’ 커버 무대를 본 뒤였다. 노래가 나의 꾸준한 취향인 ‘갈구하는 남자’ 스타일인 데다, 춤이 멋있었다.  그 후로 방탄의 음악과 예능이라는 신세계가 열리게 된 것이다! 손성득 안무가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지, 노래와 춤이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춤이었다. 음악도 들을수록 빠져들었다. 가사에서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다 일곱 명 누구 하나 각각의 매력과 캐릭터로 끼어넣은 듯한 깍두기 하나 없이 조화로웠다. 노래와 춤으로 좋아졌다가 예능과 백스테이지 영상으로 굳히기에 들어가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에 빠져 든 것이다. 얼터너티브 락이나 슈게이징 장르의 음악을 더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앨범 면면에 다양한 트랙들과 멤버들의 커버 음악까지 더해져서 ‘아이돌’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경험도 더해졌다. ‘Fake love’의 락 버전을 정말 좋아한다. 그리고 ‘House of Cards’ 같은  어덜트 팝 장르의 곡도 정말 좋다. (좋아하는 곡은 너무 많아서 다음에 다시 쓰도록 하겠다) 


멤버들 다 좋은데 그중에서도 우리 지민이. 박지민 

팬레터에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쓴 나의 손을 순간 탓하며 주책맞다 생각했 다.

하지만 그의 춤 선, 그의 목소리, 그의 귀여움을 알아챈 사람이라면 응당 그럴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너무 좋은데 한편으로는, 아이돌 산업에 대한 반감도 같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가수 CD를 사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가사와 Thanks to, 그리고 뮤지션의 사진 몇장만 있어도 좋았다. 최근에  방탄 앨범을 네 장 샀는데, CD라기보다 화보집에 가까운 느낌이라 내 기준에서는 군더더기가 심한 앨범 같았다. 더군다나 앨범 화보도 여러 버전으로 발매해서 팬심을 이용해 돈을 버는 듯해서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자발적인 ATM기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일까? 순수한 마음과 적당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게 가능한가?  아무튼 최애 멤버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 50만 원어치 앨범을 사서 유튜브에 영상 올리는 것도 봤는데, 이건 좀 씁쓸한 단면이다. 나는 생활인이고 대출인이기 때문에 돈을 쓰는 일에 있어서는 몇 배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적당한 선이 어디인가 고민하면서.


그리고 나 자신에게 드는 의문은,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마음은 사실 내 이상/ 욕구에 투영에서 비롯된다는 자각에서 시작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좋다가 싫어질 수도 있고 그런 거겠지만, 좋은 마음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그들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어떤 것이 생기는 것이 바람직한가 묻게 된다. 

그들이 먼 훗날이라도 이들이 성추행/ 폭행 건으로 사회면 이슈에 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된다.  그들이 여러모로 개념 차고 나쁘지 않은 남성이길 바라는 것 또한 지극히 내 관점에서의  바람이라는 것도 잘 알고있다.  20대의 건장한 청년들이니, 건강한 연애도 하고 늦지 않은 성장을 했으면 하는 기우도 있다. 물론 알아서 다 하고 있을 것이다. 모를 뿐이지. 대놓고 연애를 할 수 없는 아이돌문화/산업도 따지고보면 굉장히 기형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에 지민이가 공개연애를 한다면? 지금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고 자신 할 수 있나? (헐, 모순적인 마음이 충돌한다!! 나도 이러고 있는데 무슨 말을 더 해!! 줴잇!)    


보통 사람들에게도 성장이란 고통을 수반하는 어려운 일이다. 항상 누군가가 뒷바라지해주고, 타인에 의해서 확인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직종의 사람들의 자아성장이란 훨씬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불혹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1세대 아이돌이 자기자신을 3인칭화하면서 무대위에 오빠로만 살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뒷모습은 속이 시끄러울 정도로 착잡했다 . 하지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이니,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었겠지.  



좋아했던 드라마를 남자 배우의 성추문으로 더 이상 이입해서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좋아했던 음악을 추문과 사건사고로 올곧게 듣지 못하게 되었을 때 아쉬울 때가 있다.

U2의 음악을 아끼고, 존경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보노의 탈세논란 이후에는 전만큼 뭉클하지가 않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정말 좋아했는데, 박유천 때문에 자꾸 변기가 떠올라서 볼 수가 없고

쏜애플도 앨범도 다 사고 공연도 다녔었는데, 자궁 냄새나는 음악은 듣기 싫다는 말 이후에 안 듣게 된다. (자기가 자라고 태어난 곳이 자궁인 거는 잊었는 모양이지?) 


좋아한 것을 다시 오롯하게 보거나 듣거나 느낄 수 없게 되는 일은 의외의 상실감이 되곤 한다.

그래서 더 좋아하고, 기대하고 싶지 않다가도 마음은 반대로 이끌린다.  

이 모든 앞선 걱정과 자아 검열에도 불구하고,

방탄소년단의 내일을 기대하게 되고, 응원하고 싶다. 

 

태어나 처음 시나브로 달궈지고 있는 덕질에 삶이 조금씩은 즐거워진다. 방탄 음악을 할머니가 되어서도 듣고 으쌰으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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