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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석 Oct 07. 2024

[브런치 표류기] 5일 차

쓰기의 시작

  내 첫 글쓰기의 시작은 유서였다. 14살, 평화로웠던 날이었고 오랜만에 출장에서 돌아오신 아버지와 아침을 가족끼리 모여 먹던 날이었다. 가족들끼리 아침을 먹던 게 얼마만이었는지 그날따라 괜히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평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침에 반찬과 국을 잔뜩 차려 놓으셨다.


  오순도순 다섯 식구가 모여 평화롭게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행복하고 화목했다. 하지만, 언제나 재앙은 전조 없이 닥치듯 이유를 모르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화를 내셨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만 여전히 난 그날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문제는 내가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은 '익숙함'이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화를 내시며 어머니에게 소리를 내지르는 상황에서, 나는 소시지를 흰 밥 위에 올려놓고 맛있게 먹었다. 그러곤 다른 반찬들 맛을 봤다. 밥그릇이 비고, 수저의 밥풀떼기 사이 내 얼굴이 비췄을 때 나는 어딘가 심한 구토감을 느꼈다.


 늘어나는 유서


  책가방을 챙겨 집을 나오자마자, 전봇대를 잡고 토를 했다. 그럼에도 개운함은 가시지 않았다. 구토감은 그날 저녁까지 이어졌다. 그날은 정말 평범한 날이었고, 그래서 그날  저녁에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인상을 쓰시면서 화를 한 번하고 두 번 내셨다.


 새벽에 창문을 열고 찬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식히려 했는데,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죽고 싶은 용기. 14살 사춘기 때문이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죽기 전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대신 유서를 썼다.


  첫 줄을 쓰고 지우고 찢고를 반복하다. 한 문장을 썼다.


'행복하기만 하고 싶은 게 제 욕심인 것 같아요'


  그러고 주르륵 그어지듯 글을 썼다. 마지막 어머니, 아버지 사랑해요 라는 말을 끝으로 마침표. 를 찍고

숨을 몰아 쉬는데, 죽고 싶은 마음은 전부 사라지고 하루종일 나를 괴롭혔던 구토감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나에게 남은 거라곤 살아있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역시 14살 사춘기 때문이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3살 버릇 여든 간다고, 그때부터 힘든 날이 있으면 매일 유서를 썼다. 그렇게 쓴 유서는 현재 58편이 넘는다. 중간의 30편 정도는 찢고 태웠다. 남은 것들은 잘 보관해 숨겨 두었다.


  내 글을 전부 들킨다 해도 그것만은 들키고 싶지 않다. 우리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아무튼 14살 때부터 유서를 쓰다, 책장에 꽂혀 있는 '이외수'작가님의 '들개'를 우연히 읽고 꿈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다 결국 펜을 돌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작가’라는 꿈은 항상 내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시인으로 방향을 바꾸고 자리를 잡게 된 것은 24살, 문학과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낀 후부터였다. 그전까지는 단순하게 글이 좋고 쓰기가 좋아 꿈만 꿨고, 시인으로 방향을 바꾼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펜을 잡고 언어를 씹고 뱉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현재,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나는 부족할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람은 본인들의 뿌리를 버리지 못한다. 결국 내 처음은 예술도 문학도 아닌, 그저 단순하게 숨을 쉬기 위함이었기에 나는 언제나 부족함을 쓸 것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다. 숨은 계속 쉬어야 하는 것이기에 부끄럽고 초라해도 끊임없이 계속 쉬어야 하는 것이기에 나는 쓰기와 뱉기를 포기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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