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잠옷 살까 말까..' 고민하던 때는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두고였다.
두툼한 수면 잠옷들은 늘 별, 하트 같은 요란한 프린트가 있거나, 분홍색, 하늘색 같은 취향이 아닌 색이라서 기피해 왔는데, 새하얗고 위아래 아무런 무늬도 없는 플리스 소재의 잠옷이 눈에 쏙 들어온 것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에게 잠옷 하나쯤은 선물해도 좋겠지!' 하는 그럴싸한 이유도 만들었는데, 연말이라선지(사실은 매월 말이 그렇다) 용돈을 다 써버렸고, 장바구니 안에만 넣어둔 채 한 해가 지나갔다.
1월은 바빴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했고, 마침 이번해 가장 큰 업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근과 한밤중의 작업 수정 요청,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는 불안한 대기 상태, 세 번의 큰 행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로 피로에 찌든 채 회사에 적응당해(?) 버리며 시간이 흘렀다. 그 한 달의 하루하루는 모두 명백한 겨울들이었다. 동파를 걱정하며 밤새 수도꼭지를 틀어두던 한파도 며칠 끼어 있었다. 내가 자는 방은 침대에 누우면 창 너머 베란다가 있는 구조인데, 이중 샷시가 아닌 거센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며 크게 우는 창문이라 그 사이로 솔솔 외풍이 불어 들어오는 것은 당연했다.
'으아, 너무 춥다. 엄마가 보내준 이렇게 두툼한 이불을 덮고 자도 너무 춥다!!!' 생각을 하며 힘겹게 잠을 청하던 새벽, 이미 때는 2월이었지만 나는 그 잠옷을 사야만 했다. 그렇게 새하얗고 상하의가 두툼한 잠옷은 2월 초 내 품에 도착했다.
잠옷을 받아 든 그때까지도 '12월 말에 샀더라면 그간 얼마나 따수운 밤들을 보냈을까..', ‘이제 와 잠옷을 사느니 차라리 밖에서 입을 수 있는 봄 옷을 하나 더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과거와 미래의 가능성이 머릿속에 뒤엉켜 있었다. 이왕 산 거 한번 얼마나 따뜻할지 보자, 라는 절반짜리 기대감을 품고 잠옷을 입어 봤다. 입었다기보다는 '들어갔다'라고 하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팔다리의 품이 훌렁한 잠옷 안으로 입장하고 나면, 앞뒤로 두 배 정도는 두툼한 사람이 된 것 같았으니까.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불 위에 누워 잤다. 얼굴과 손발에 닿는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질 만큼 두툼한 잠옷은 나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해줬다. 어떤 아침에는 땀을 뻘뻘 흘린 채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집안을 환기하거나 식물에 햇볕을 쬐어주러 베란다에 나가는 일도 두렵지 않아 졌다. 늘 어푸어푸 세수를 하면 티셔츠 자락이 젖다 못해 그 안의 배까지도 축축하고 차갑게 만드는 사람이 나인데, 이 잠옷은 겉에서 바로 물을 흡수해주니 난 언제나 뽀송뽀송하고 쾌적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외출할 때 입기도 애매하고, 집에서 입을 때도 기분이 별로인 티셔츠와 바지를 입었던 지난날들에 비하면, 아무 고민 없이 이 목적이 명확한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를 명쾌한 사람처럼 만들었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불필요한 일 하나를 말끔히 지워버린 기분이랄까.
잠옷 하나가 내게 주는 기쁨이 이렇게 많다니. 이제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훌러덩 옷을 벗고 잠옷 속으로 들어간다. 바깥세상에서 따뜻한 집으로, 그 안에서 또 두툼한 잠옷으로. 사실 목적이 명확한 옷이라고는 했지만, 나는 이 옷을 입고 집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