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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진 Feb 14. 2021

본 투 비 프로페셔널 (下)

왜소한 체격에 하얀 얼굴, 동그랗고 커다란 눈, 주황빛 머리가 반짝이는 아론이 나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차분하고 조용한 말투였다.

그리 구체적으로 그려보진 않았었지만, 막연히 예측했던 어떤 특성과도 다른 인물이 내 앞에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가 쾌활한 성격일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다른 머리카락 색을 가진 한 사람의 등장으로 우리 집 명절은 웃긴 풍경이 되었다. 아론은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 동생이 친척들과의 대화를 통역해 주었고, 어떻게든 영어로 한 마디씩을 걸어보려는 삼촌과 작은 아빠들의 큰 목소리가 뒤죽박죽 섞였다. 그 사이에서 나도 조금의 영어와 다수의 한국말을 번갈아 가며 대화를 했다.

"May I smoke here?"

대화가 오가다 아빠가 제일 처음 풀-센텐스로 말한 문장은 이거였고, 어떻게 하고 많은 문장 중 이것을 택했는지 나는 낄낄대며 웃었다.


아론은 영국에서 동생과 채팅을 하던 때에도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고, 이 곳에서 일을 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열심이었다. 아빠는 'Aaron'이라는 영어 이름의 발음이 어려웠다. '우리말로는 어떻게 읽으면 돼? 한번 적어줘 봐~'라고 했고, 아론은 종이에 자기 이름을 한국말로 적는다.

'아론이'

진희라는 내 이름 뒤엔 '이'가 안 붙고, '아론'이라는 자기 이름에는 '이'가 붙는다는 걸 안다니!!! 부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자기의 이름을 적다니!!!!

나는 그의 한국말 실력에 깜짝 놀라고 만다..


아론이와 얘기하는 건 신이 났다. 그는 한국 영화나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고, 알고 보니 나와 취향도 비슷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국내 인디 뮤지션을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해, 이것저것 더 많은 음악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묻고 서로를 알아갔다. 자동차 뒷좌석에 나와 동생, 아론이 이렇게 나란히 앉아 얘기를 하며 외갓집에도 다녀왔다.


동생이 먼저 광주 집에 도착해있고, 나도 연휴 전날 미리 집에 내려온 또 다른 명절이었다.

"아론은 아직 안 내려왔어?"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응. 오늘 학원 수업이 늦게 끝나서 밤에 버스 타고 내려온다더라. 그래서 이따 데리러 가려고."

"아~ 몇 시에 온대?"

"아까 통화했는데 밤 열두 시 반 넘을 거래. 아론이 뭐라고 한 줄 알아? '엄마, 나 선물이 너무 많아요. 무거워서 데리러 와요~'래."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밤 열두 시, 엄마는 주섬주섬 차키를 챙겨 터미널로 향했다. 나도 엄마를 따라 나갔다. 동생은? 집에서 자고 있었다. 그것은 누가 봐도 고향에 내려오는 막내아들을 마중 나가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동생은 광주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있었기에 동생을 만나러 올 때마다 아론이와 우리 부모님의 시간도 쌓여 갔다. 무수한 주말은 물론, 추석과 설날, 또 하나의 추석과 설날, 그리고 추석과.. 어느덧 아론이 우리와 명절 연휴를 보낸 것도 열 번을 넘었으니 말이다.


그 사이 동생은 서울에 있는 회사로 취직을 했으며, 경기도에 방을 얻어 독립도 했다. 아론도 3년 간의 익산 영어학원 근무를 마치고 경기도의 어느 영어 유치원으로 일터를 옮기기로 했다. 나는 가끔 아론이 영어 학원에서 일하는 얘기를 듣곤 했고,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로 미루어보아, 그는 아이들도 정말 잘 가르치는 선생님일 거라는 확신을 했다.


그러나 익산 생활의 마무리는 깔끔하지 못했다. 그가 3년 간 성실하게 일하며 원장 선생님의 인정을 받은 것과는 달리, 한 달, 두 달 조금씩 월급이 밀렸었고, 학원을 관둘 때까지도 원장 선생님은 아론에게 밀린 월급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론은 '그래도 원장 선생님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얘기했지만, 엄마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엄마는 주중엔 회사를 다니면서 사이사이 시간을 내 익산과 광주를 왔다 갔다 했다. 법률공단에 직접 신고를 했다. 아론의 이름을 새긴 도장도 팠다. 아론은 이제 한국말을 정말 잘해서 엄마와도 한국어로 카톡을 했지만, 엄마는 아론을 더 정확한 말로 안심시키고 싶었다. 그녀가 찾은 방법은 '파파고' 번역기. 그 앱을 다운받아 자기가 하려고 하는 말을 한국어로 입력했고, 그걸 복사해 아론이에게 보냈다.


My mom will go to Iksan and apply for legar advice.


이보다 더 완벽한 문장이 있을까. 이 문장 안에는 엄마가 아론의 엄마라는 것, 어떻게든 일을 잘 처리할 것이라는 결연함마저 묻어났다. 이후에 아론이 엄마가 보낸 이 카톡을 내게 보여주었을 때, 나는 왜인지 마음이 왈칵했다. 그녀는 어느새 또 한 사람의 엄마가 되어 있구나. 사랑을 주고 있구나. 엄마는 그냥 엄마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사람이구나.


아론은 밀린 월급도 받고 퇴직금도 받았다. 그리고 더 근무 조건이 나은 영어 유치원으로 옮겨 또다시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매년 여름휴가 시즌에는 영국에 있는 엄마, 아빠를 보러 갔었는데,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부모님을 직접 본지도 일 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엄마는 아론에게 '엄마 안 보고 싶어?'라고 묻는다. '보고 싶지만 괜찮아요. 여기 한국에도 엄마가 있잖아요.' 아론이 답한다.


엄마는 주말이면 서울에 있는 우리 집에 올라와 반찬도 해주고 여기저기 내 눈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깨끗하게 광을 낸다. 그다음 분당에 있는 동생 집에 들러 광주에서 가져온 겨울 옷을 내어주고, 이불도 바꿔주고, 여름옷을 정리해 다시 차에 싣는다. 그다음 아론이 집에 들러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하고, 그가 미처 치우지 못한 개수대까지도 말끔하게 비운다. 그리고 다시 광주로 돌아가 월요일 회사에 출근한다.


세 명의 딸과 아들을 빈틈없이 챙기는 엄마. 언제 어디서든 문제를 스스로 짊어지고 해결하는 엄마. 엄마는 언제부터 이렇게 엄마 같은 사람이 된 걸까. 가끔은 그 사실에 눈물이 나면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어쨌든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프로페셔널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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