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일상
내가 쓰는 글의 첫 번째 독자는 나이다. 내가 쓰는 글의 가장 중요한 독자는 나이다. 나는 작가이자 독자이며, 독자이자 작가다. 미안하지만, 다른 독자님들은 그다음이다.
# 들어가기에 앞서 : 공간 / 시간 / 마음의 거리
여기, 107년 전, 독립운동 소식과
6500km, 오늘, 전쟁의 소식을
함께 듣는 날에, 마음의 원근을 생각한다.
거리에는 원근이 있다.
- 공간(눈) : 먼 곳은 작고, 가까운 곳은 크다.
- 시간(뇌) : 먼 곳은 빠르고, 가까운 곳은 느리다.
- 마음 : 먼 곳은 가볍고, 가까운 곳은 무겁다.
마음의 원근(远近).
내 마음에서 먼 사람과 일은 한없이 작고 가볍고,
내 마음에서 가까운 사람과 일은 한없이 크고 무겁다.
# 전쟁의 소식을 듣다.
전쟁의 소식이 들려온다. 수천 킬로미터의 먼 곳의 이야기이다. 2026년 2월 28일,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공습하였다. 미디어의 발달 덕분에, 그 소식은 내 휴대폰을 통해 전해진다. 나의 눈과 휴대폰 간의 거리 20여 센티미터.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수천 킬로미터 보다 더 먼 나라 이야기이다. 현실감이 없다. 누군가의 죽음의 소식이, 나의 세계에는 마치, 호수에 던저진 작은 돌멩이만큼의 파장도 없다.
전쟁의 소식과 더불어 그에 대한 반응들도 전해진다. 누군가는 희생된 사람들을 연민한다. 학교에 떨어진 포탄과 이로 인한 소녀들의 죽음을 기린다. 누군가는 전쟁으로 인한 경제와 투자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하고, 누군가는 사업을 걱정한다. 누군가는 전쟁을 성전으로 합리화하고, 누군가는 전쟁을 규탄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냥 외면한다.
# 죽음에 대한 태도
"결국 죽는다"는 명제를 받아들이는 각기 다른 태도에서, 현재의 삶에 대한 태도가 결정되는데, 나는 이를 '허무/쾌락/망각/초월'로 분류한다.
A. 허무 :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거…
‘덧없다’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
B. 쾌락 : 그냥 현재를 즐기자.
음주가무, 술, 오락, 도박, 마약…
C. 망각 : 죽음을 잊는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D. 초월 : 죽음 뒤에 내세(来世)가 있고,
현세(现世)의 행위가 내세를 결정함
# 전쟁이라는 "집단 죽음에 대한 소식"을 대하는 태도
전쟁의 소식과 반응을 유형으로 분류해 본다. 물론 사람들에게 반응은 복합적으로 일어난다.
A. 외면 : 소식을 피한다. 불편한 이야기, 나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외면한다.
B. 분리 : 마치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처럼, 나의 세계와 소식의 세계를 분리한다.
C. 상심 : 마음 아파하며, 상실로 인한 허무함이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D. 반응(저항) : 전쟁 소식에 반응하고, 의견을 표명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반전 캠페인 등 행동한다.
E. 반응(옹호) : 전쟁의 명분, 전쟁을 통한 적대세력 타도에 지지하고 응원한다.
F. 반응(영향) : 전쟁의 결과가 나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예측하고 준비한다.
# 집단 이기주의
악의 축 제거, 독재자 타도, 독재권력의 탄압으로부터의 해방, 정의를 위한 전쟁, 성전(圣战), 어떠한 레테르로 포장되더라도 전쟁은 결국 생명의 짓밟음이며, 이의 본질은 '집단 이기주의'이다. 그리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단 이기주의'는 결국 ‘개인 이기주의’의 집합체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나'를 내세우는 이기주의는 쉽게 비난당한다. 그러나 '나'를 넘어 '우리'라는 울타리가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것은 대의가 되고, 명분이 된다. 민족주의, 종교주의... 사람들은 대의를 위해 전쟁을 한다. 외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익"이다. 현시대에서 가장 큰 집단은 "국가"이다. 국가의 이익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다. 집단이라는 옷을 입은 이기주의는 적극성을 띤다.
# 같으나 다른 현상 : 누군가에게 어떠한 죽음은 크고, 어떠한 죽음은 작다.
107년 전 삼일운동의 희생자들을 기리며 기념하는 오늘, 멀리 이란에서 들려오는 오늘의 전쟁 소식에는 무감각하다. 1907년 고종은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다. 그날 서방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소식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졌을까?
미국에 있어서 2001년 911 테러로 인한 무역센터의 폭격으로 인한 죽음은, 지금도 하이라이트 된다. 그들은 여전히 그날의 희생자를 기린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다른 나라의 도시를 폭격하며 환호하고 있다.
교회에서 사람들은 2천여년 전 예수의 죽음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지만, 바로 오늘 포탄에 죽고 있는 소녀들의 죽음의 소식에는 잠시 마음이 머물고 만다. '선교'를 위해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지만, 오늘의 '죽음들'에는 침묵한다.
시간의 거리와 물리적 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음의 거리가 중요하다. 이란의 전쟁은 우리에게, 마음의 거리가 너무나 먼 사람들의 사건이다.
# 전쟁과 일상을 살아가는 태도
나의 생명과 나의 아픔은 무척 중요하다. 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과 아픔은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나와의 관계가 멀고, 영향이 멀수록 그들의 생명과 아픔은 작아진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와의 거리가 먼 모든 생명의 상실에 아파하고 있다면, 나의 일상은 유지될 수가 없다.
소시민으로서 마음의 평화를 지키고,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생명의 약탈을 바라보고 인식하며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뉴스를 보며 항상 울고 있을 수는 없다. 눈물은 나를 위한 것이지, 전쟁의 희생자에게 어떠한 위로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뉴스를 회피하고 외면한다고, 내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고 해서 전쟁이 발생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전쟁으로 인한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영향, 나의 사업과 투자에 대한 영향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도 비난할 마음은 없다. 당연한 일이며, 필요한 일이다.
다만, 생명의 상실을 가볍게 치부하면 인간성을 상실할 수 있다. 나와의 거리가 먼 타자이지만, 생명의 존귀함을 잊지 말자. 생명의 상실에 대해 보고, 기억하고, 애도하자. 그리고 반전의 태도를 표명하자. 나는 이란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집단살인을 쉽게 용인하지 말자. 생명의 소중함을 잊지 말자. 권력과 이념, 집단이기주의의 수레에 깔린 무고한 시민과 명령에 따라 살인을 하고 죽임을 당하는 군인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의 피눈물을 안타까워하며 묵념한다. 조속히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