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인데 만나면 안되는거잖아.
너 매력적이야, 너 좋아
비밀로 할수있어?
어디 살어? 학교 어디야?
우리 폰으로 사귀자
용돈 문상줄께
사랑해
내가 지금 보고 듣고 있는게 정말 실화인건가. 지난 2022년 KBS 시사기획 '창'에 보도된 내용들이다. 창의 제작진들은 성인 여성을 13세로 위장해 '온라인 그루밍'의 실태를 정나라게 파헤쳤다. 성인 여성이라 하더라도 성적인 목적을 가진 남성을 상대하기에 너무나 버거워 보였다.
사랑한다는 말로 신뢰를 쌓은 후 성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남성들. 그들의 짓거리(?)를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기도, 역겨워서 몇 번이나 눈을 돌리기도 했다. 연기를 했던 성인 여성도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가슴이 미어졌다.
온라인 그루밍은 채팅 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매체를 통해 신뢰 관계를 형성한 후 약점을 잡아 성적 노예 혹은 돈벌이 등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범죄다. 바깥 활동이 어려워진 코로나19 기간에 온라인 그루밍의 신고건수는 그야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허은아 의원(국민의힘, 비례대표)이 경찰청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신고접수한 디지털성범죄정보는 2020년 6322건에서 2021년 1만1568건으로 80% 이상이나 늘었다. 2022년 8월까지 신고접수된 현황은 1만1156건으로 이미 그 직전해의 한해치를 넘어섰다.
온라인 채팅창, 게임, SNS 등에서 음란물을 공유하는 '통신매체이용음란' 범죄는 발생·검거 건수 모두 2020년 2047건, 1701건에서 지난해 5067건, 3956건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2022 7월까지 5937건, 4500건으로 집계돼 이미 작년 전체 발생 및 검거 건수를 뛰어 넘었다.
국내도 이렇지만 해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창이 보도되기 2년 전인 2020년에는 유럽의 온라인 그루밍 실태를 다룬 '위와치유'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TV 방영 프로그램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OTT)은 왓챠를 통해 그 다음해에 나왔다. 위와치유를 본 국내 시청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입소문이 발빠르게 퍼졌고 나도 지인분의 추천을 받았다. 그 이후 KBS 창에서 국내용으로 기획된 듯 하다.
위왓치유에서 나온 내용도 정말 충격적이었다. 미성년자인지 뻔히 알면서도 온라인에서 온갖 것을 상대방에게 요구했고, 급기야 오프라인 만남까지 가졌다. 나체사진 요구, 가스라이팅, 협박, 그루밍 등을 시도하는 남성은 총 2458명이었고그 중 21명이 등장했다. 이 남성들은 성에 대한 가치관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을 무자비하게 이용했다.
타인에게 접근이 용이한 디지털. 우리 현대인에게 굉장한 혜택을 주고 있지만, 이렇듯 사람을 오히려 헤치는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왓차의 위와치유 페이지에 적혀진 코멘트들은 나의 목소리기도 했다.
그 중 익명의 어떤 분이 "성범죄는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문명을 등에 업고 여성의 일상과 삶을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위협하고 있다. 인터넷이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것만큼, 범죄의 피해나 양상도 지구촌 전체로 넓어졌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등 아무것도 드러낼 필요 없는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 때문인지 남성들의 말과 행동은 적나라하다. 가해 남성들에게 어떠한 성적 수치심이나 양심, 도덕은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이라는 가정하에 그들은 거짓말로 아이들을 현혹하고, 협박하고, 아이들이 마치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인형인 것처럼 쥐락펴락하려 한다. 그들에게 여성은, 아이는 그저 도구일 뿐이다"라고 적어놨다. 정말 공감가는 부분이다.
포털 사이트에 온라인 그루밍을 검색해봐도 도움을 요청하는 글들이 종종 보인다. 중학생 딸이 온라인 그루밍을 당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는 식이다. 부디 잘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올라온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꼭 신고하세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있으시다면 꼭 알고 계셨으면.
지난 2018~2019년도에 걸쳐 전국을 충격을 도가니에 몰아 넣었던 일명 'n번방' 사건 이후에 더 강력한 처벌을 담는 법도 제정 됐지만 우리의 현실은 크게 달라진게 없다.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는 듯 하다.
n번방·박사방 사건은 미성년자 등 여성들을 상대로 성착취 영상이 해외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되고 판매된 대표적인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여성들의 성 착취 영상을 마구잡이로 업로드 했다. 이것도 모자라 신상정보까지 파헤치고 공개했다.
익명이라는 가면을 앞세워 자신의 욕망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사람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위에 나열한 수치들만 봐도 디지털이 인간의 악한 면을 더 드러내는 도구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n번방 사건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법이 강화됐다.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이에 가담했을 시, 실형을 살게 된다. 사이버 렉카(가짜뉴스를 온라인에 퍼나르는 행위), 사이버 블링(온라인 괴롭힘) 등 관련 법도 발의된 상태다. 학교에서는 사이버 폭력이 증가함에 따라 맞춤형 대응을 하겠다고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 선생님들이 이 문제를 떠안아야해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다.
2021년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사이버 폭력은 카카오톡 등 메신저가 전체 중 절반에 가까운 46%, 인스타 페북 등 SNS 26.7%, 온라인 게임 15.4%, 기타가 6.9%를 차지했다.
카톡으로 왕따를 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고등학교 교사인 나의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일부 학생들이 왕따를 시킬 한 학생을 단톡방에 초대해 언어폭행을 한 뒤, 오프라인에서까지 괴롭히고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 단톡방에는 10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다고.
친구에게 학생들이 무엇 때문에 100명씩이나 모여 있는지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 지역 근방에 있는 학생들이 소개 소개로 모여 그들끼리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문화가 있는 듯 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각 학급에서 사이버 언어 등 폭력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를 나서서 해결해 주는 어른이 없다 시피 하는 게 현실이라는 이야기. 친구도 학생들로 부터 설명을 들어 알고는 있지만 섣부르게 나서기가 애매한 상황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디지털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아이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줄이겠다. 글을 쓰면서 답답하면서도 가슴이 시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경찰청이 버젓이 있지만 경찰복을 입고 있는 권위 있는 아저씨에게 자신의 피해 상황을 이야기 하기가 힘들 것이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마찬가지. 주변의 어른들에게 도움을 선뜻 요청할 수가 없는 청소년들과 어른의 관계. 거기에 커다란 물음표가 생겼다. 우리 사이에 있어야 할 신뢰를 잃어 버렸다. 어디서 부터 였을까.
그리고 일부 남성들의 추악함. 디지털이 더 증폭시켰을까. 아니면 원래도 그랬던 것이 디지털로 드러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