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놀의 고백.. "미디어 생산자이자 중독자였어요"

미디어가 영혼을 잠식한다

by 미놀

지난 기자활동을 돌아보면 겉으론 화려했지만 단 한순간도 편한 날이 없었다.

주말이라 해도 출입처에 일이 터지면 현장으로 달려가거나 급작스런 재택근무가 이어졌다. 낮의 업무 강도도 센 데다 야근을 한 다음 날에는 거의 파김치가 되었다. 긴장을 하면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다 보니 언제 끝날지 모를 번아웃에 늘 시달렸다.

기자 10년차부터 거북이 목에 오른쪽 등과 어깨, 팔이 굳어가면서 병원과 마사지, 한의원의 문지방이 닳도록 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쉽사리 낫지 않았다. 기자를 관둔 지 10개월이 돼 가는 지금도 통증을 달고 산다. 가끔 노트북을 쓰는 날이면 또다시 오른쪽 등과 어깨가 아파오고 다시 병원에 가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번아웃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인다. 가까운 친구들을 봐도 마흔이 넘어가면서 여기저기 아프다고 호소하는 일이 잦아졌다. 기자는 여기에 곱하기 3, 즉 3배 이상의 강도로 일을 한다고 듣곤 했다.

아프기 전엔 몰랐지만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뚜렷하게 알게 됐다.

24시간, 365일 깨어있어야 된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들어야 했던 '옛날 기자'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직장생활 하듯 편하게 일하는 기자들이 많아졌다. 어떤 선배는 진짜 기자가 점점 없어져 멸종위기종이 되었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온라인'은 옛날 기자, 지금 기자 할 것없이 공평하게 삼켜버렸다.

종이보다 빠르고 편리한 포털과 홈페이지는 처음에는 쉽게 기사를 내보내고 읽는다는 솜사탕 같은 존재였지만 금세 괴물이 되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기사의 온라인 클릭수에 따른 업무 평가, 광고 단가 등의 압력은 기자정신도, 윤리의식도, 개인의 건강까지도 모두 빼앗아 갔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때 오보를 날리고 제대로 현장 소식을 전하지 않은 기자들에게 기레기라는 말이 쏟아졌다. 당시 직업적 충격 대신 익숙해져 버린 한숨만이 날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기자라면 누구나 단독과 특종에 목을 메기 마련이다. 내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수시로 체크해야 했다. 누구도 쓰지 않은 기사를 내보내야만 유능한 기자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 부처의 정책 발표 등 영향을 받는 다른 부서의 기사도 꼼꼼하게 읽어야 했다. 이렇게 해도 놓치는 일이 있다.

더 큰 문제는 클릭수다. 나는 경영회계쪽을 전공한 탓에 줄곧 기업 쪽을 맡아왔다. 정치, 사회, 연예같은 부서의 기자들은 어느 정도 클릭수가 보장됐지만 기업이나 경제 관련 부서는 큰 이슈가 터지면 어쩌다 한두 번 기대이상의 클릭수가 나온다.

클릭수의 압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일명 제목 낚시를 하기 위해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바꿔 보는 일이 중요한 업무가 됐다. 관심있는 특정인들만 읽는 기사들이라 클릭수가 적게 나올 수밖에 없지만 어디까지나 기자 개인의 사정일 뿐이다.

대다수의 언론사들은 클릭수를 목적으로 하는 전문부서를 꾸린다. 이 부서는 광고단가와 직결되는 클릭수와 독자수를 공격적으로 늘리는 역할을 한다. 최전방에서 밥그릇을 지키는 정의의 부대처럼. 이런 시스템속에서 일하고 있는 미디어 생산자가 미디어 중독자가 되는 것은 일순간이다. 미디어 중독자가 되지 않으면 일을 잘할 수가 없다. 결국 조직에서 빠르게 도태된다.

고백컨데 나는 미디어 중독자였다.

뒤돌아보면 잘 쓴 기사보다 부끄러운 기사가 더 생각난다. 그만큼 기사 욕심이 많았고 기자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도 강한 편이었다. 양질의 기사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날이 있을때면 회사 탓, 시스템 탓, 사회 탓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참 싫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친 것 같다. 환경이 그렇고 그런 것은 모두에게 해당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여기에 지방대 출신, 여성, 고향이 시골이라는 3대 악재가 크게 한 몫했다. 열등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영혼과 육체를 갈아 넣다 시피 했다.

지금은 그 후유증을 온 몸으로 겪고 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쓰는 시간은 확실히 줄었음에도 뉴스와 각종 정보를 줄곧 체크하는 습관은 없어지지 않았다. 통증이 없는 왼팔로 스마트폰이 옮겨졌다. 요즘 트렌드가 무엇인지, 어떤 이슈가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10년을 넘게 따라다니는 등과 목, 어깨 통증은 노트북과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에 의한 것이라고 정형외과 의사가 말해 주었다. 같은 자세로 계속 있다보면 신체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굳어버린다고. 나 같은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고 나이대도 어려지고 있다고 한다.

너무 많은 정보를 오랜 기간 동안 접하면서 집중력이 과도하게 쓰여 자율신경계인 교감과 부교감 신경이 불안정해졌다. 이슈를 놓치면 안된다는 불안증은 어느새 강박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기자를 관두고 신경 안정을 위해 한동안 정신과를 찾았다.

정신과 의사는 정형외과 의사와 짠듯이 같은 말을 했다. 학생부터 직장인, 노인층까지 비슷한 증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진료 대기 시간에 마주쳤던 교복 입은 학생들이 갈 때마다 늘고 있었다.

각자 사연은 다르겠지만 매일 겪는 치열한 경쟁속에서 다 같이 아파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인 분모로 보인다. 이 속에 SNS 등 소셜미디어와 경쟁을 부치기는 뉴스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환경이 큰 영향을 줬으리라 짐작해 본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기로 마음 먹은 이후부터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미디어를 보는 대신 멍 때리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 선택한 필라테스 등 체형교정 운동과 걷기도 어느덧 삶의 일부가 됐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와 스마트폰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상당부분 돌아보게 했다.

이런 경험을 한 탓에 너무 어린 나이에 유튜브 등 미디어에 빠져 있는 아동과 청소년들을 보면 죄책감에 마음이 불편하다. 모르는 사이라 혼자서만 "아무 의심없이 제목 장사에 놀아나면 안 되는데"라고 소심하게 말하곤 했다.

당장은 스마트폰 속 미디어가 재미있어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상당한 부작용을 겪을 것이 뻔히 보인다. 중독이란 그만큼 혼자 해결하기 힘든 영역이다. IT기술자와 미디어 생산자의 어벤저스급 결합은 거대한 영향력만큼이나 어두운 그늘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은 미디어 세상을 모르면 타인보다 뒤쳐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들과의 대화에도 잘 끼어들지 못하고 주눅이 든다. 더 빠르게 클릭하고 더 많이 볼걸 하면서 후회도 한다. 이런 작용은 자아의 깊숙한 곳을 파고들어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미디어를 알아야 일명 인싸가 되는 것 같은 착각이 정신을 지배하고 미디어를 클릭하는 행동으로 옮긴다. 이 같은 작용은 특종을 놓치면 안 되는 기자가 겪는 스트레스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는 아랍의 속담은 현대인들에게 다르게 쓰여야 할 것이다. '미디어가 영혼을 잠식한다'로. 이런 점을 어떤 방식으로 알려야 하는가가 나의 가장 큰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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