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통영에 여행 갔다가 깜짝 놀랐다. 통영 남망산공원에 조성한 디지털 테마파크 ‘빛의 정원’인 디피랑을 우연히 들렀는데 상상 이상의 즐거움을 얻었다. 통영의 어촌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디피랑은 디지털 피랑의 합성어다. 지난해 6월 기준 유료 관람객만 30만 명을 돌파했다. 대단한 기록이다. 통영에 여행 가는 사람이 있다면 적극 추천해 주고 싶다.
빛의 정원은 날이 어둑어둑해지는 무렵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야외에 마련된 디지털(미디어)로 빛을 이용한 다양한 그림과 이벤트들은 여행객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때로는 토속적인 도깨비불 같은 이미지가 툭 튀어나오고 때로는 현대 디지털 아트의 높은 수준을 보란 듯이 보여주었다. 여기저기서 "와~" "아, 깜짝이야"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통영 여행이후로 나는 디지털 아트에 관심이 부쩍 갔다. 강릉과 제주, 여수에 있는 아르떼뮤지엄도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 광고 동영상만 봐도 디지털로 구현한 어마어마한 스케일이 느껴질 정도다. 다음 여행 목록에 아르떼 뮤지엄을 넣어놨다.
그렇게 귀하게 디지털 아트를 접했는데 최근 디지털 아트 전시회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한 지인은 딸과 함께 경기도 양평에서 열리는 '빈센트 반 고흐 미디어아트전'에 간다며 설레는 마음을 전해왔다. 고흐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에서 확장해 관람객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전시회다.
서울의 워커힐 호텔에서 열리는 클림트의 디지털 아트전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클림트의 그림을 색다른 방식으로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지인이 이 전시를 다녀온후 "정말 신기하고 좋았다"라고 후기를 남겨주었다. 추천한다는 말과 함께.
그러던 중 양평의 한 전시장에 우연히 들렸다. 개인이 투자해서 지은 전시장으로 자연의 어느 한 부분을 예술적으로 재현해 놓았다. 인상 깊었던 전시공간은 등대와 안개였다. 문을 열자마자 인공 안개가 눈앞에 펼쳐졌고 저 멀리 등대가 보였다. 밤바다를 상징하기에 공간은 어두웠고 등대 불빛은 어떤 희망을 보여주듯 안갯속을 뚫고 여기저기를 비추었다.
준비된 벤치에 앉아 그저 멍하니 등대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말 어느 바닷가의 밤바다에 온 듯 했다. 평소에도 워낙 안개를 좋아해서 그랬는지 그 전시실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어떤 전시공간은 물의 파동과 빛을 이용해서 환상적인 느낌을 주었다. 어둠과 물 그리고 멜로디에 춤추는 빛의 향연은 색다른 세계로 곧바로 끌고 갔다.
디피랑에서 느낀 와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기술을!.. 함께 동행한 남편도 이런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기분 좋은 감각의 자극들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트의 세계에 푹 빠진 듯한 착각.
그런데 더 신기한건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어떤 게 좋았다 하며 종알거리는 말들이 사라졌다. 아트의 세계에서 롤러코스터를 잠깐 타다 땅을 밟은 느낌이랄까. 아 잘 탔다. 이제 밥 먹으러 갈까 하는 그런 상황 같은.
비슷한 경험이 하나 더 있다. 기자 시절 체험기사를 쓰고자 기업에서 협찬 받은 '디지털 액자'가 그랬다. 그림을 워낙 좋아해서 해당 기업에서 제품을 체험기용으로 대여해 줬을 때 정말 설레었다. 명화를 하나도 아니고 원하는 만큼의 양을 그것도 좋아하는 것으로 선택할 수 있다니! 어렸을 적 부모님께 받은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이런 그림 저런 그림 바꿔도 보고 신기함을 느껴보고 그런 경험이 단 이틀만에 끝이 났다. 체험 기간 동안 매일 다른 그림을 넣어보고 느끼겠다는 포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몇 초만에 다른 그림으로 계속 바뀌는 액자는 곧 식상해졌고 급기야 전기세가 너무 나오지 않을까 하면서 코드를 아예 빼버렸다.
왜 이런 감정이 들었는지 사람이 직접 그린 명화 전시회를 다녀오고 그 이유를 뒤늦게 알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회에서다. 인기가 높은 탓에 티켓은 이미 매진된지 오래됐다. 나는 인터넷으로 새로고침을 여러 번 누른 끝에 취소표를 어렵게 구했다. 입소문의 향연 속으로 들어가는 특별한 티켓.
화려한 디지털 쇼도 없고 그저 그림을 비추는 조명이 전부인 클래식한 전시회. 그런데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현장표를 구하기 위해 긴 줄을 섰다. 한파가 이어지는 냉동실 같은 추운 날씨에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오디오가이드를 대여했다. 가기 전에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해 공부도 했다.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는데 이것은 높은 소리가 아니라 낮은 소리였다. 그림 앞에선 나는 이리 보고 저리보고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 보고. 그림이 주는 어떤 여운, 어떤 특별함을 한참이나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혼자 온 사람도 많았고 가족 단위라 하더라도 그리 시끄럽지 않았다.
집에 오는 내내 같이 남변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유럽의 역사 그리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다른 나라에 대한 각자의 지식 향연이 펼쳐졌다. 박물관에서 비싼 돈을 주고 산 도록도 집에 와서 계속 펼쳐보았다. 나른 한 오후에 커피 한잔 마시면서 그림과 이야기가 있는 도록을 읽으니 괜히 우아해진 것 같았다. 교양도 쌓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꽤 좋은 감정들이었다.
디지털 아트는 인스타에서 핫한 브런치 맛집에 다녀온 느낌이었다. SNS나 카톡 프로필 등으로 주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그런 심리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직접 그린 그림 전시회는 후미진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나만 알았으면 하는 김치찌개를 파는 맛집같았다. 이 김치찌개를 파는 아주머니가 언제부터 장사를 하셨냐면, 재료는 어떤 것을 쓰시냐면 하고 동행자와 할 이야기가 많은. 물론 합스부르크 전시회는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워낙 자자해, 양쪽의 기능을 다하는 듯하다.
지금은 둘다 필요한 시대다. 인스타 브런치 맛집도 가보고, 유명하진 않지만 나에게만은 의미 있는 그러 곳도 만들고 싶은 양가감정들.
오감을 넘어서 육감을 부드럽게 성장시켜 주는 느낌은 왜 사람이 그린 그림 쪽일까.
사람의 손길에서만 전해지는 그 무엇이 단순히 자극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혼까지도 전달이 되서일까. 그것을 느끼기 위해 예술작품을 만나는 것일 수 있겠다.
디지털 아트를 경험하고 나서야 사람이 그린 그림에 대한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높아 보였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지웠다 그리기를 반복했을까, 자기 삶과 예술 사이에서 얼마나 고뇌했을까 하는 정말 사적인 질문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왔다. 거기에 더 감탄을 금치 못할 그들만의 천재성. 더 깊게 더 확실하게 매혹당하고 싶은 예술의 영역.
이 영역을 최고의 기술과 자본으로 뭉친 디지털이라는 형태로 전달되고 있다. 그것도 아주 화려하고 스케일 있게. 그 마지막 여운이라는 감각까지도 디지털 아트가 수용할 수 있는지 더 지켜볼 일이다.
합스부르크 전시회의 '마리 앙뚜아네뜨'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