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디톡스의 어려움
"깨달음의 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몇 년 전 나는 한 불교단체에서 인기리에 진행되고 있는 '깨달음의 장'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이미 수만명이 다녀갔다. 그 이후 명상의 장, 나눔의 장에도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자여만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3가지 프로그램은 모두 섭렵하리라는 결심을 했던 터라 아무런 정보도 없이 훌쩍 짐을 쌌다. 여름휴가 대신 4박 5일을 보내기로 하고 문경으로 떠났다.
욕심과 어리석음 사이에서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당시 언론사 기자로 한창 바쁠때였는데 마음의 공허함은 더 깊어만 갔다.
주말 내내 집에서 지친 몸을 눕혀 자고 나면 어두운 저녁이 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면 허겁지겁 취재 아이템을 보고하고 다시 분과 초를 다투는 일상이 반복됐다. 어떤 주말은 당직과 현장 취재로 반납하기도 했다.
몸이 번아웃 되기 직전이었고 마음또한 편치 않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절에 도착하니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제일 먼저 반겼다. 공간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는 듯 했다.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고 숲에서만 나는 냄새가 코 끝을 간지럽혔다. 한 방에 모인 사람은 대략 15명 정도였다. 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듯 했지만, 1명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마음 편하게 쉬는 걸까, 무슨 프로그램을 한다는 거지. 호기심이 가시기도 전에 첫날부터 충격을 받았다. 정말 필요한 스킨, 로션, 속옷 몇가지, 양말 등 외에 가져간 물건을 모두 반납해야 했다.
스탭 한분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스마트폰은요?
그것도 반납해야 합니다.
네? 말도 안돼.. 스마트폰이나 휴대폰 없이 단 하루도 살아본적이 없는데.(더 정확히는 1998년 이후 삐삐를 2년 가까이 쓰고 휴대폰으로 바꾼후 다시 스마트폰으로 바꾼후 그것과 떨어진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프로그램 참여 신청서도 안썼을 것이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훌쩍 떠났기에 참여할 수 있었다.
머리속이 복잡했다. "아무리 휴가 기간이라지만 출입처에서 급한 이슈가 터지면 연락이 올텐데" "부모님한테도 얘기를 안했는데" "수시로 카톡 확인을 해왔는데 출입처나 취재원들이 급하게 연락을 해오면 어떻게 하지"
스마트폰을 반납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본능적으로 수많은 질문들이 스쳐지나갔다. 불안감또한 증폭되고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 집으로 가버려? 어느덧 내 손은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 입니까?"
깨달음의 장에서 본격적으로 질문이 시작됐다. 동시에 스마트폰 금단 현상도 시작됐다. 질문에 돌아가면서 답을 해야 하는데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침묵 수행을 같이 해야 하던 터라 답답함이 고조됐다.
"저만 그런가요. 혹시 스마트폰 없이 괜찮으세요?" 결국 비슷한 나이또래의 여자분에게 말을 걸고야 말았다. 그분은 깜짝 놀라면서도 "저도 힘드네요"하고 공감해주었다. 우주의 카오스 속에 빠진 듯한 하루를 겨우 보내고 다음 날이 됐는데도 온통 머리속은 스마트폰 생각 뿐이었다.
"제가 가족들에게 스마트폰을 안쓴다고 얘기를 안했거든요. 카톡 대문글이라도 여기 전화번호를 넣어둘 수 있을까요?"
"안됩니다"
"......"
스마트폰 금단현상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그렇게 둘째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밤 잠자리에 들면서 내가 얼마나 스마트폰에 중독돼 있는 사람인지, 없었을때 불안도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지 확연하게 느껴졌다.
세번째 날이 밝아왔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질문이 이어졌고 삼일만에 마음 깊은 곳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지나가는 나그네인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긴 대답이지만 그 말을 하고 나니 이상하게 속이 시원한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마트폰에 대한 존재를 잊었다. 될데로 되라. 나도 모르겠다. 이 마음이 튀어나오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스마트폰을 집착하는 나를 들여다 보았다. 그런 나를 찾아가는 여정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다 마치고 가장 먼저 돌려 받은 것이 스마트폰이다. 참가자들 모두 이것때문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전원이 켜지고 여기저기서 "카톡, 카톡" 소리가 울려퍼졌다.
우리는 다같이 한바탕 웃었다. 원래 살던 세계와 연결된 듯 안도감이 밀려왔으나 아, 이것이 또한 내 삶의 족쇄라는 것도 알게됐다. 카톡에는 100여개의 메세지가 쌓여 있었다. 열어보니 크게 급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머지. 이건. 내 마음만 급한 거였네.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삶이란 무엇인지, 인간답게 산다는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인생이 주는 질문과 나를 감싸고 있는 자연과 계절, 소리, 냄새에 집중하는 삶이 얼마나 '나다운' 것인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편리하다고 재미있다고 사람들과 연결돼 외롭지 않다고 의지하고 집착해온 스마트폰. 그러면서도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했던 최첨단 물건. 디지털 거리두기는 해방이었다. 짜릿한 해방.
그 다음해 이어진 명상수련에서도 스마트폰을 반납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정토회 '깨달음의 장' 홈페이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