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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an 04. 2024


흙먼지 들러붙은 얼굴을 씻지도 못하고

가방을 베개 삼아 잠들었던 적 있었어.

늦여름이나 초가을쯤 되었던 거 같아.

대청마루에 누워 잠이 들었어.

뒤란에서 부는 바람과 매미소리가 한 데

뒤섞여 요람을 흔들고 자장가를 불렀지.

나는 거부하지 않았어.

옷섶을 파고드는 바람은 시원했고

귓전에 속삭이는 소리는 포근했거든.

나는 젖먹이 아이처럼 쌔근쌔근 잠들었어.

얼마나 잤을까?

달그락달그락 밥 짓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을 때 이미 석양이 지고 있었고

하늘 가득 잠자리들 떼로 날고 있었어.

사십 년도 훌쩍 지난 그때가

잊히지도 않고 이렇듯 생생한 걸 보면

단잠을 잤구나 하게도 돼.

꿈이라도 한 자락 꾸었는지 모를 일이야.

세월이 쌓였어.

굽이굽이 먼 길을 걷고 또 걸었지.

가끔은 나룻배에 걸터앉아 마냥 흘렀어.

때로는 귀뚜라미 친구 삼아

술잔을 기울였는지도 모를 일이야.

꿈이었을까? 생시였을까?

그래서 그랬을까?

詩人墨客들은 하나 같이 꿈이었다고 했어.

누구는 봄꽃 흐드러진 봄날의 꿈이라 했고

누구는 거기에다 찬란한 날을 덧붙였어.

자고 일어나니 허망했다 탄식을 했고

부질없어 애달프다 벽만 바라보던 이도

결국은 꿈을 말했지.

책가방을 베고 잠들던 날 꾸었던 꿈일까?

설마 하니 벌써 잠에서 깰 시간은 아니겠지.

잡다한 생각으로 뒤척이다가

마침내 부스스 잠에서 깼을 때

잠깐 눈을 감고 흘러오다 보니 여기야.

말을 하려는 지도 모르겠어.

근데 여기는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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