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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an 08. 2024

팔자려니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철옹성처럼 다잡았던 마음들이 여기저기에서 요란하게 무너졌다. 춘삼월 해빙기에 축대 무너지듯 했다. 여드레, 이쯤이면 다짐은 단단했고 의지는 냉철한 거였다 말해도 나쁘지 않다. 작심삼일의 명성은 하루 이틀에 얻은 영광이 아니었으므로 그렇다. 곤두박질쳤던 담배며 소주의 판매량이 슬금슬금 원점으로 돌아가고 뿌연 탄식만 고요한 정적을 깼다.


그만하면 되었다 위로하자. 지나치는 처진 어깨를 다독여주자. 의지박약도 선천성질병 중 하나다. 입술을 아무리 힘껏 깨물어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가뜩이나 성성해진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자책할 일 없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도 살아가는 한 방편일 수 있음이다. 누구는 여드레는커녕 단 하루도 지켜내지 못한 다짐이다.

가끔은 지레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한 것, 계획한 것 모두를 이루며 사는 사람은 몇 되지도 않는다.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뜨문뜨문 고개를 쳐드는 그들은 돌연변이 일 뿐이다.

팔자려니 했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디엔에이에 각인된 본능처럼 가는 실타래 하나 풀어헤치며 사는 게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해봤다. 넘지 못할 장벽을 마주한다거나 끊어낼 수 없는 생각에 빠졌다거나 하는 순간이면 이런 게 팔자고 운명이 아닐까 싶었다. 우연에 우연이 쌓이는 게 살아가는 일이라고도 했다. 하필이면 그때 거기에 머물렀을까? 하필이면 그때에....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뚜벅뚜벅 걷던 초행길이 너무도 익숙하고 몇 번이고 왔던 것만 같은 느낌도 그 '하필이면'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너무 애달픈 것에는 '팔자려니' 하는 꼬리표 하나 매달아 두고서 위로를 삼아도 좋겠다. 철퍼덕 주저앉아 자포자기하는 게 아니다. 숨 한 번 크게 들이마시는 위로의 시간을 삼는 거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이 솟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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