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 울타리는 가시가 사나웠다. 새끼손가락만 한 가시가 어찌나 촘촘했던지 귀양살이의 형벌에 처해진 양반네는 탱자나무 울 안에 갇혀 하늘만 바라보았다. 위리안치圍籬安置는 그래서 생각보다 험한 형벌이기도 했다. 정치적 타협이 없다면 한 번 들어가면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웠다. 몇 평 하늘만 바라보다 세상을 등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살아서 다시 멀쩡한 길을 걷는다는 건 천운이 따라야만 하기도 했다. 스스로 파고든 탱자나무 울타리가 아닌 다음에야 가시는 절망이고 끝 간데 모를 낭떠러지였다.
평생을 두고 죽을 자리를 찾아 헤맨다는 북유럽의 가시나무새가 탱자나무를 만났다면 두 눈이 주먹만 하게 커졌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죽을 자리가 바로 여기였구나 탄성을 내뱉고는 이내 가시를 향해 곤두박질쳤을 터였다. 꺼억꺼억 서럽던 날에도 끝내 울음을 토해내지 못하는 가시나무새는 평생을 두고 단 한 번 가시에 찔려 죽어가는 순간에야 비로소 세상 제일 아름다운 울음을 운다고 했다. 긴 침묵이었고 인고의 세월이었다. 안으로 안으로만 삭히던 울분도, 뜨겁고 애달팠던 단심도, 죽음에서만 한 줄기 노래로 터져 나왔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절절한 마음을 한 줄 비문으로 새긴 유언 같은 사랑이었다. 가시는 그래서 돌을 쪼아 말 하나 새긴 정이기도 했다.
그대는 심장 깊이 파고든 가시였으면 좋겠다. 뜨겁던 시간마저 말끔히 지워버려 마침내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해야만 겨우 떠오르는 건 슬픈 일이다. 애써 지워내는 모습은 볼썽사납고, 그렇게 지워질 사랑이라면 부끄러워 떠들 수도 없다. 문신처럼 살갗을 파고든 사랑이라야 사랑했다 옛날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 듯싶어서 그렇다. 옹이 하나쯤은 가슴에 품어야만 했고 진한 흉터 바라보며 쓴웃음이라도 지을 터였다. 그러니 내 사랑은 심장 깊이 박힌 탱자나무 가시였으면 좋겠다. 순간순간 심장을 찔러 내가 너를 사랑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끝내는 심장 가장 깊은 곳까지 찔러 가시나무새의 노래로 신음을 토하고 싶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