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봄 Jan 10. 2024

가시


탱자나무 울타리는 가시가 사나웠다. 새끼손가락만 한 가시가 어찌나 촘촘했던지 귀양살이의 형벌에 처해진 양반네는 탱자나무 울 안에 갇혀 하늘만 바라보았다. 위리안치圍籬安置는 그래서 생각보다 험한 형벌이기도 했다. 정치적 타협이 없다면 한 번 들어가면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웠다. 몇 평 하늘만 바라보다 세상을 등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살아서 다시 멀쩡한 길을 걷는다는 건 천운이 따라야만 하기도 했다. 스스로 파고든 탱자나무 울타리가 아닌 다음에야 가시는 절망이고 끝 간데 모를 낭떠러지였다.

평생을 두고 죽을 자리를 찾아 헤맨다는 북유럽의 가시나무새가 탱자나무를 만났다면 두 눈이 주먹만 하게 커졌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죽을 자리가 바로 여기였구나 탄성을 내뱉고는 이내 가시를 향해 곤두박질쳤을 터였다. 꺼억꺼억 서럽던 날에도 끝내 울음을 토해내지 못하는 가시나무새는 평생을 두고 단 한 번 가시에 찔려 죽어가는 순간에야 비로소 세상 제일 아름다운 울음을 운다고 했다. 긴 침묵이었고 인고의 세월이었다. 안으로 안으로만 삭히던 울분도, 뜨겁고 애달팠던 단심도, 죽음에서만 한 줄기 노래로 터져 나왔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절절한 마음을 한 줄 비문으로 새긴 유언 같은 사랑이었다. 가시는 그래서 돌을 쪼아 말 하나 새긴 정이기도 했다.

그대는 심장 깊이 파고든 가시였으면 좋겠다. 뜨겁던 시간마저 말끔히 지워버려 마침내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해야만 겨우 떠오르는 건 슬픈 일이다. 애써 지워내는 모습은 볼썽사납고, 그렇게 지워질 사랑이라면 부끄러워 떠들 수도 없다. 문신처럼 살갗을 파고든 사랑이라야 사랑했다 옛날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 듯싶어서 그렇다. 옹이 하나쯤은 가슴에 품어야만 했고 진한 흉터 바라보며 쓴웃음이라도 지을 터였다. 그러니 내 사랑은 심장 깊이 박힌 탱자나무 가시였으면 좋겠다. 순간순간 심장을 찔러 내가 너를 사랑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끝내는 심장 가장 깊은 곳까지 찔러 가시나무새의 노래로 신음을 토하고 싶어 그렇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