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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an 27. 2024

미몽迷夢


꿈夢이라는 말은 자면서 꾸는 꿈을 뜻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흐리멍덩하고 뚜렷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뿌옇다거나 머리가 복잡해 어지럽다거나 하는 혼미한 상황을 설명하는 데에 더 무게를 싣는 말이다.

안개 자욱한 길이 꿈에 어울린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의 길이 꿈이고, 자나 깨나 꿈꾸게 되는 삶이고 보면 인생 자체가 꿈이기도 하다. 뚜렷하지 못해 바로 볼 수 없는 꿈이다. 바로 볼 수 없으니 장님 코끼리 더듬듯 더듬더듬 어림짐작으로 볼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다. 중천에 해 뜨기만을 기다리며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으니 등 떠밀려 길을 걷는다.

모두가 그렇다. 너와 내가 따로 없다. 현명한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지팡이 하나쯤 더 챙겨 들고 걷는 길일 터다. 돌다리도 한 번 더 두들겨 보는 조심성도 있을 테지만 결국 길게 보면 오리무중의 저편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시덤불 우거진 숲이 떡하니 버티고 섰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안개 걷힌 꽃길이 마중하고 있을지 누가 알까. 걸어야만 만나게 되는 길이다. 두렵다거나 찜찜하다고 해서 길을 포기할 수도 없다. 주막에 앉아 벌건 대낮부터 탁배기잔에 취해 흔들린들 아무 소용도 없다. 주막에 앉아 술타령에 흔들리는 그것도 꿈이라서 그렇다. 유혹에 빠져 더욱 혼미한 꿈 미몽迷夢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 진퇴양난이다. 삼신할미가 점지하는 순간부터 시작된 안갯길이다. 나와는 무관하게 시작된 길이지만 낙점되는 순간 길은 오롯이 내 것이 되고야 만다. 억울하다 하소연할 방법도 없다. 떠들어봐야 입만 아프다. 그저 묵묵하게 종잡을 수 없는 길을 걷는 거다. 그게 인생이다.

꿈을 꾼다. 곤한 잠에 빠져서도 꾸고 멀쩡히 일어나 앉았어도 꿈을 꾼다. 가위에 눌려 버둥거리는 낮잠 속 꿈이야 허허 그거 참.... 헛기침 몇 번으로 털어버린다지만 옥황상제의 명부에 가 닿아야 하는 꿈은 털어낼 수도 없다. 명부의 먹물이 흐릿해져 사라질 때까지 꿈꾸는 길이다. 가뜩이나 희미하고 어지러운 길인데 온갖 유혹이 손길을 뻗힌다. 꿈에 꿈을 더하는 꼴이다.

안개 낀 장충단공원에는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 몰래 훔쳐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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