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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an 30. 2024

소풍길

다섯 달만이다. 그러니까 무더위가 아직 남아있던 구월 중순에 다녀온 게 마지막이다. 그동안 가을이 지나갔고 겨울도 얼마 남기지 않은 날이다. 해가 바뀌고도 벌써 한 달이 지났으니 꽤나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목발을 짚고 겨우겨우 다녀왔었다. 늘 병원길을 동행해 주던 여동생이 취직을 한 관계로 절뚝거리며 처음 홀로 다녀온 병원이었다. 진료비를 수납하고 대기실에서 죽은 말 지키듯 멀뚱멀뚱 하루를 보내는 건 정말 지루하고 온몸이 뒤틀리는 고문이었다. 그것도 말동무도 없이 기다리다 잠깐 진료를 보고 다시 과를 옮겨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못할 짓이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건강을 담보할 수 있는 거라서 거부할 수가 없다.  주리를 틀 게 되더라도 가야만 하는 길이다.

그나마 약속된 날짜에 맞춰 다시 길을 나선다는 건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뜻하지 않게 예약된 날짜를 앞당긴다던가 아니면 아예 취소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그건 분명 몸에 탈이 났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 그렇다.

소풍길을 나서듯 김밥 한 줄을 사고 삶은 달걀과 사이다도 한 병 준비를 해야 할까 보다. 등나무 피크닉 가방도 눈치껏 준비하고서 룰루랄라 콧노래도 흥얼거리면 소독약냄새 풀풀 날리는 병원길도 나름 봐줄 만할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반이라고 무탈하게 5개월을 보낸 보상이다 생각하면 나쁘지 않을 듯도 싶다. 대나무의 마디처럼 다섯 달의 버팀을 준비하는 일이다.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밤하늘을 본다. 비가 내릴 거라는 소식도 없었고 한낮의 기온은 이미 봄날과 다르지 않았다. 골방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사람구경도 실컷 하고 바깥바람맞으며 커피도 한 잔 마셔야겠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길은 의미가 달라졌다. 마음에 이는 바람은 이미 봄바람이다. 하여, 병원 가는 길은 소풍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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