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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un 20. 2024

핸드폰


요놈은 입이 어찌나 무거운지 종일 입술 한 번을 달싹거리지 않는다. 누군가 몰래 다가와 옆구리를 쿡 찌른다고 해도 신음소리 한 번 토해내지 않을 놈이다. 송충이 같은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는 입술을 깨물 게 분명하다. 지독하고 무서운 놈이다. 몇 날 며칠이고 돌부처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는 동안 해가 떴고 달이 떴다 이지러졌다. 바람이 불었고 무더위가 성깔을 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미동도 없다. 세상 돌아가는 모양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는 듯 면벽수도 도를 닦는다.

"허허 고놈 참...."

장단을 맞추고 추임새를 넣어줄 놈이 없으니 덩달아 나도 그렇다. 말 없는 두 놈이 앉아 눈만 멀뚱멀뚱 껌뻑거리며 아침을 맞았고 저녁을 맞았다. 집은 고요했고 적막했다. 어느 산사의 고요가 내려앉았다. 그나마 산사라치면 댕그렁 댕그렁 풍경소리라도 있을 터였지만 요놈의 방구석엔 풍경 하나 매달 처마도 없다. 하여, 종일 고요하다. 개미 한 마리 까치발로 걷는다고 해도 그 걷는 소리가 천둥소리로 울 판이다. 입은 음식을 먹는 용도 외에는 다른 쓰임이 없다. 말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말은 쓰임을 다해 그 뜻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비 맞은 뭣처럼 중얼중얼 혼자 떠든다는 것도 영 꼴이 우스워서 그만두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이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내치기도 좀 그렇다. 가뭄에 콩 나듯 띄엄띄엄 필요한 때가 있다는 게 녀석의 질긴 목숨줄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곁에 두고서 눈을 흘긴다. 끌끌 혀도 찬다. 이쯤 되면 쫓아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 하나 만지작거리다 씁쓸히 내려놓았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놈을 거둔다는 건 아까운 일이라서 그렇다. 쓸모가 차고 넘친다면 까짓 거 푼돈쯤이야!' 할 수도 있다지만 무용지물에 연신 물을 퍼부어야만 하는 건 아까운 일이었다.

팥쥐의 깨진 독처럼 두꺼비 한 마리 데려다가 구멍이라도 메워야만 할까? 싱거운 생각을 떠올렸다. 또 모른다. 꿩 대신 닭이라고 녀석 대신 두꺼비란 놈이 말벗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아이고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값은 제대로 치르셔야죠. ㅎㅎㅎ"

정신 나간 말이라도 두런두런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입 안에 푸른곰팡이 넘쳐나는 날에 날씨는 푹푹 찌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하는 일이 없어도 때 되면 배는 꼬르륵 요란스러웠다. 욕을 하더라도 밥은 먹여야만 했다. 녀석 보소. 충전기 입에 물고서 게걸스럽게도 먹는다. 하는 짓이 곱다 보니 먹는 모습도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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