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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un 22. 2024

파김치


쇠락하고 낡은 것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골목골목에 엎드리거나 웅크렸던 군상들이 덜그럭 대는 몸뚱이를 끌었다. 벌겋게 녹이 슨 몸뚱이는 시끄럽고 번잡했다. 뇌에서 내려진 지령을 제대로, 그것도 단박에 수행하는 관절이 없었으므로 보통은 수고스러웠고 요란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때가 되면 여기저기 숨었던 노구를 일으켜 모여들었다. 웅성웅성 바글바글 시장통이 따로 없다. 앉고 기댈 수 있는 곳마다 사람들은 넘쳐났고 그들을 통제하려는 사람들은 그만큼 목청을 높였다.

이른 아침이었다. 물론 희뿌옇게 먼동이 트는 새벽은 아니었지만 삐걱거리는 몸뚱이로 모여들었다는 사실 하나만 기저에 놓고 본다면 이른 아침이 분명했다. 게다가 모여든 군상의 절반은 아침밥을 챙기지도 못하고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물 몇 모금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야만 했다. 음식물로 오염되지 않은 맑은 피가 필요했으므로 금식을 요구했다. 자발적이 아닌 강제적 단식이다. 돌조각을 씹어 삼켜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청춘이었다면 한낱 그깟 거에 불과하겠지만 누구에게는 산을 옮기는 것만큼이나 대단하고 힘든 일일 수도 있다. 비쩍 마른 팔뚝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바늘은 날카롭고 두꺼웠다.

"조금 따끔할 거예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사람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그래.... 말처럼 따끔했다. 밥도 먹지 못한 사람들이 이른 아침을 달려와서는 그렇게 채혈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세월의 무게를 이고 진 결과였다. 쇠락하고 낡아지지 않는 것은 없었다. 강철로 만들어진 기계도 닳고 녹이 슬 듯 사람의 몸도 그렇게 녹이 슬었다. 세월을 비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개인적 편차와 경중은 있겠지만 결국은 병원을 가까이할 수밖에 없다. 새벽길을 달려와 옹기종기 앉아 호명을 기다린다. 누구는 의자에 깊이 몸을 기대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또 누구는 동행한 보호자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다. 불안하고 초조하다는 방증일 터다. 가뜩이나 약해진 마음은 지나치는 말 한마디가 불안하고 두려울 터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낡아지는 몸처럼 마음도 둘렀던 갑옷을 하나씩 벗는 거와 마찬가지였다.

병원에서의 몇 시간은 사람을 지치게 했다.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머리가 지끈거려 견딜 수가 없다. 좀처럼 두통이란 놈을 겪어보지 못했음에도 병원을 다녀온 날에는 편두통으로 눈살을 찌푸려야만 했다. 바늘 쌈지를 가져다가 통째로 머리에 꽂는 거였다. 팔자에도 없는 고슴도치로 변이 해 심술을 부렸다. 고단하고 안타까운 사연 하나가 정수리에 꽂혔고 바라볼수록 부러운 모습도 하나 이마에 꽂혔다. 순서를 기다리며 귀에 담은 말들이 바늘로 날을 세웠고 때때로 향긋한 꽃으로 피었다. 말이 넘쳐나고 감정이 요동을 치는 몇 시간은 그래서 사람을 힘들게 했다. 파김치가 따로 없다. 웅성웅성 모여든 낡아 초라한 것들 틈에 앉아 머릿수 하나를 보탰다. 유난히 파김치를 좋아했던 나는 스스로 파김치로 발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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