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일랑 갖지 말고 그냥 그런 거 있잖아. 금은보화 그득한 그런 거...
하늘의 8할은 구름
비를 뿌리던 장마전선은 남쪽으로 물러났는지, 아니면 품에 품었던 비 다 쏟아내고 생을 마감했는지 모르겠다. 비는 그쳤다. 하지만 아직도 하늘의 8할은 먹구름이 점령하고서 으름장을 놓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굵은 빗방울을 쏟아내리라 엄포를 부린다. 오랜만에 큰 비 몰려간 개울은 맑은 물이 넘실거려 청량하고, 떼지어 헤엄치는 버들치며 피라미는 생기가 넘쳐 보기에 좋다. 이쯤이면 충분하다 싶은데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의 뜻이야 어찌 알까. 그래도 구름을 비집고 비추는 햇살을 보면서 2할의 힘을 느낀다. 잿빛 하늘 여덟에 파란 하늘 둘, 힘의 기울기는 잿빛으로 기울었다. 그늘만 가득한 산과 침침하게 보이는 개울 저편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였으나 마음은 파랑, 반짝이는 햇살을 따라 가볍고 상쾌하다. 때로는 이유도 없이 유쾌함 마저 느낀다. 흥얼흥얼 중얼중얼, 배시시 새어나는 미소, 피어있는 꽃송이도 괜슬히 어루만지는 손길, 다 파란 하늘 둘의 힘이다.
얘야, 박씨 하나 부탁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기도 하고, 때때로 꽃보다 이파리가 아름다울 수도 있다. 뭐라 표현해야 하는지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는 많은 것들과 일들이 있다. 형용하기 어려운 것. 표현의 한계와 앎의 미약이 미안한, 그래서 얼렁뚱땅 뭉뚱그려 형용할 수 없다,로 넘기게 되는 것들에 오늘의 초록을 추가해야 겠다. 충분한 수분에 적당한 습도, 거기다가 적절한 햇살이 더해져서 만들어낸 초록의 조화를 뭐라 표현해야 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름답다, 예쁘다, 싱그럽다, 푸른향기 등등의 말이 어디 가당키나 할까? 까까머리 소년의 풋사랑 아니면 청매실의 찡그린 신맛이거나 아니면 싱아의 여린 신맛. 그래, 그쯤이면 얼추 어울릴 법한 말이다. 초란을 깨뜨려 흐르는 노른자처럼 완숙되지 않은 싱그러운 초록이 오늘의 초록이여서 입안 가득 침을 고이게 하는 그렇지만 미간 찌푸리지 않아 시원한 싱아의 시그러운 신맛. 이런 고민의 말들을 꺼내게 만든 어여쁜 녀석이 줄기 하나를 꺾였다. 다 좋은 것만은 없다던 말처럼 비바람에 가지를 꺾여 늘어진 그가 애잖해서, 어쩌면 좋구나 좋아,만 떠들면서 정작 제대로 돌보지 못한 내가 미안해서 흥부의 제비 다리를 만들었다. 찢긴 게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툭 하고 꺾인 가지에 노란 테잎 조금 잘라다가 돌돌 말아 붙여주니 감쪽 같다. 보기는 좀 그렇다 해도 남은 꽃봉우리 꽃을 피우는 데에는 지장이 없으리라 격려의 말도 남기고, '그래, 괜찮을 거야!' 자위도 한다.
"내 마음 알지? 그럼 있잖아. 이런 부탁을 하면 어떨지 모르겠네.... 미안한데 나 박씨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