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꽃들이 모로 누워 울었다

by 이봄

흙마당을 밟으면 신음소리가 튀어나와. 꾸르륵꾸르륵 주린 배에서 새어나는 '배고파~~!'쯤의 소리 같기도 하고, 어쩌면 어제의 과음으로 뒤틀린 장이 'help me~~!'를 외치는 소릴지도 모르겠어. 닭의 똥처럼 굵은 눈물도 꾸역꾸역 뱉어내는 게 사뭇 심각해서 바라보는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마당이 이렇게 살려달라 애원을 하는데 그 흙을 먹이로 삼는 지렁이 따위는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 과꽃을 옮겨심은 화단과 경계도 없는 언저리쯤에 취나물이 자라는데, 꼬물거려 헐떡이는 지렁이는 익사직전의 몰골로 널부러졌어. 물에 불어서 그런지 온통 우동의 불어터진 면발마냥 윤기도 없이 탱탱했어. 아, 징그러운 놈.... 초상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몰골이 사나워서 사진은 포기를 했어.

과하면 이로울 게 없다, 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야. 지나침은 화를 부르고 종국에는 파멸을 초래하는 것이고. 그래서 '光而不耀'의 겸손을 군자의 덕목으로 삼았다 싶기도 해. 빛남을 가려 (상대를) 눈부시지 않게, 여문 벼이삭의 갈길이 여기에 있다 얘기하는, 멋진 말이야. 다만, 그 실천이 어려운 게 함정이랄까. 억수장마 드는 날엔 천사마저 날개를 접어 고요했어. 목적에 앞서 수단을 살펴야 하는 날도 있다 싶은 그런 겸손이겠지. 달빛 고운 날에 하얗게 피어나는 천사의 나팔도 치맛자락 살펴가며 다소곳이 자리하고, 행여라도 짙은 향기에 놀라할까 내리는 빗줄기에 훠이훠이 헹구고서 얌전하게도 앉았지. 뉘라도 요란하면 누구는 조용히 맞장구 치지 않음이 中의 균형일 거야.

하늘하늘 하늘만 바라보던 루드베키아 꽃무더기 무더기로 드러누워 흙내라도 맡는 겐지 코가 땅에 닿았다. 낭창이는 꽃줄기로 하늘거리는 녀석은 물론 아니야. 선머슴처럼 꽃줄기에 털도 북슬북슬 호기로운데 임을 향한 단심이 깊어 하늘만 쳐다보는 거지. 해바라기처럼 늘 그랬어. 동산에 두둥실 떠올라 절뚝이며 서산 능선을 걸을 때까지 뻗뻗한 고개 주무르며 하늘만 보았는데, 난데 없이 밤도 밤이요, 낮도 밤인 날에 눈 맞춰 바라볼 임은 보이지 않고 뚝뚝 눈물만 쏟아내니 절망이었을 거야. 해변 가득 "사랑해 분희야~~~!" 하트도 서넛 뿅뿅 날리면서 언약하던 그 맹세, 파도에 지워지듯 무너지고, 부서지고.... 아마도 그러리라 싶어. 엎드려 우는 꽃무더기 위로 임의 미소는 언제쯤 따스하게 내리려나 모르겠어.

잿빛 흙탕물이 사납게 울부짖으며 몰려가고 있는데, 호랑이의 등에 탄 고양이쯤 되려나, 덩달아 음료수병에 온갖 플라스틱 전사들이 우쭐해서 달리는 거야. 거 참, 어디에 숨었다가 저리도 당당하게 마을을 호령하고, 주민을 조롱하며 흘러가는지 모를 일이야. 풍차로 달려들던 라만차의 돈키호떼라도 되는냥 달려가는 뒷모습에 산천초목이 몸을 떨고, 하늘과 땅이 침묵하니 세상은 쿠르릉꾸르릉 돌 굴리며 질주하는 개울물이 갑 중의 갑이야. 그래, 오늘은 네가 최고다. 그렇게 알터이니 계곡마다 숲속마다, 감추고 숨은 너의 똘마니들, 부르고 겁박해서 줄줄이 사탕으로 엮어 잡고 멀리로, 멀리로 가려무나. 사라졌다는 개천의 용이 너로해서 부활했다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낼 터이니 부디 그리만 하여 다오. 빌어도 보았는데 결국은 우주로 갈 것 아니어서 비는 마음이 애잔하네. 에효....

걸판진 장맛비에 흠씬 젖은 것들 여기저기 모여앉아 쥐어짜고 털어내려 몸짓이 분주한데 다시 또 투닥투닥 빗방울이 떨어진다. 장마야, 장마! 마른장마라고 비웃던 엊그제가 좀 미안하기도 하려니와 조석으로 변하는 마음이 원숭이가 된 듯도 하고. 어쨌거나 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하나 남기고서 다시 뒹굴거릴 침대로 간다. 전기장판 최저로 켜놓고서 몸에 묻은 습기나 날릴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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