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이 참 좋아요. 가을엔 또 어찌나 입맛을 돋구는지요
아름드리 밤나무 한 그루
비지땀 흘리며 들깨를 심다가 그늘에 앉았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을 쓰윽 손으로 훔치고서 담배 한 개비 피워물다가 나무를 보았다. 푸른 이끼를 갑옷처럼 두른 모습이 제법 감탄스럽다고 생각했다. 툭툭 불거진 껍데기 하며, 검버섯으로 피어난 지의류가 켜켜히 세월을 말한다. 장정 혼자서는 감쌀 수 없는 아름드리 밤나무. 나무는 족히 반백 년을 살았다. 살아온 세월이 나와 얼추 비슷하다. 건방을 섞어 얘기하면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기도 하다. 물론, 백 년을 못 사는 사람의 시간으로 어떻게 같이란 말을 붙일까 마는.
동고동락한 세월이 길기도 했다. 코흘리개 어린 자식들을 위해 밭뙤기 자투리 마다 밤나무를 심었다. "남들 먹는 거 기웃거리는 것처럼 볼썽사나운 게 없는 거야!"를 입에 달고 사셨던 아비는 온갖 과일나무를 심으셨다. 철마다 나고 자라는 과일이 다르니 그만큼의 나무가 필요했고, 그렇게 심으셨다. 앵두나무와 자두나무는 봄을 위한 나무였고, 복숭아와 오얏나무는 여름을 위한 과일이어 뒷뜰과 앞마당에 심었다. 가을로 여무는 대추나와 밤나무도 빼놓을 수 없는 나무여서 옹기종기 서로를 기대어 자랐다. 제삿상에 올라야 하는 배나무와 사과나무도 제멋에 겨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래서 그런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한 것도 많지 않았다 싶은 유년이었다. 철마다 알아서 크는 나무와 종알종알 그늘에서 뛰어놀던 내가 세월의 이끼를 푸르게 이고서 마주 앉아 세월을 곱씹는다. 어린 소년은 이팔청춘을 지나고 불혹의 강을 건너와 흰머리 성긴 모양으로 앉았고, 한 뼘에 지나지 않던 나무는 뿌리를 뻗고 가지를 펼치더니 어느새 훌쩍 키를 넘어서고 지붕을 지나쳐서 저기 하늘 밑 작은 숲이 되었다. 세월이 '살과도 같다'하더니만 빈 말이 아니다. 많은 것을 건너고 헤아리기 힘든 날들을 지나쳐서 밤나무 그늘에 앉았다. 익숙한 사람이 떠났고 정겨운 시간이 흘렀다. 남은 것보다 떠난 것이 오히려 많은 요즘이고 보니 아쉽고 그립다는 말을 거울처럼 마주하며 산다.
무에 그리 바빴을까?
깡마른 체구에 덥수룩한 수염까지 닮아도 참 많이 닮았다. 급한 성격에다 불같은 성격도 그렇고 삐치기 잘하는 것도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그런 아비는 바삐 세상을 등졌다. 지병으로 한동안 고생을 했는데 그래서 그런가 몇 되지도 않는 기억 속에서 아비는 늘 아팠다. 아픈 아비와 뭘 어쩌지도 못하면서 애닯아하던 어린 나.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떠난 아비와 남은 밤나무 그리고 그가 떠났던 나이쯤 된 내가 그늘에 앉아 얘기를 나눈다. 기억은 더듬이처럼 서로를 더듬고, 시선은 입술이 되어 아주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입맞춤을 한다.
"그늘이 참 좋아요. 가을에 먹는 밤은 또 얼마나 고소하고 단지 모르겠어요"
"그래? 그렇구나! 애들은 뭐라든?"
"애들이요? 애들도 정말 좋아해요. 너희 할아버지가 심으신 밤이야. 어때? 맛있지?"
아버지의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그의 아들도 가끔은 아버지의 아버지가 심은 밤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힌다.
무엇으로 남을까?
기대어 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비지땀 식힐 그늘이 있어서 그렇고 기억으로 곱씹을 밤이 여무니 그렇다. 애들에게 물을 수 있으니 또한 다행이고 복이기도 하다. 남겨 받았으니 유산이다. 대를 잇는 '어때? 그늘이 참 좋지?' 얘기할 수 있으니 세월을 건넌 위대함이 거기에 있다.
"정말 좋아요!" 대답할 이야기 하나쯤 남겨야 오래도록 기억으로 남을 터인데 정작 남길 게 없다. 받았으니 남기는 것도 일인데 아비의 아들이 아들에게 기억될 게 있기나 하려는지?
"어때? 정말 좋지?"
"네, 정말 좋아요. 어쩜 이렇게 시원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