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밝히고 건강을 지킨다고 하더이다 마는
"청려장靑藜杖"을 아시나요?
왁자지껄 취객이 거리를 휘젓고 멀어지는 그 흔들리는 골목 어드메쯤 네온싸인으로 취객을 유혹하고, 연인들을 부르는 불밝힌 청려장이 그 청려장 일까요? 대실은 2만 원이요, 숙박은 4만 원.... 뭐, 이런 장들이 도시의 뒷골목 풍경이긴 하지요.
하긴, 뒤안길이란 퇴물의 느낌은 오십 보 백 보 도토리 키재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청려장은 들에 널린 명아주란 놈으로 만든 지팡이를 이르는 말입니다. 예전, 나이 지긋한 초로의 지인에게 건강장수를 기원하며 청려장을 선물 했다지요. 나이 50세를 맞은 아버지에게 자식이 올리는 청려장은 가장家杖이라 하고, 60세 환갑에 맞춰 마을에서 주는 것을 향장鄕杖, 70세의 장수를 축하하며 나라에서 내리는 것은 국장國杖이라고 했으며, 80세에 이른 어른에게 나랏님이 하사하는 지팡이를 조장朝杖이라 하여 귀히 여겼다고 합니다. 다 흘러간 얘기가 되었지만 그랬다고 해요. 지금은 허리 꼿꼿한 노년청춘이 늘기도 했고 길은 모두 아스팔트며 시멘트로 곱게 포장이 되어서 넘어질 염려도 없지요. 게다가 전동휠체어나 유모차가 대세라고도 합니다. 그러니 귀한 효도선물이었던 청려장은 기억속에 박제로 남게 되었죠.
명아주는 여린 순은 데쳐 나물로 먹기도 하고, 독충에 물린 환부에 즙을 바르기도 했지요. 더위먹은 사람에게 음용시키기도 했구요. 잡초 취급받는 명아주는 한방의 팔방미인이요, 예를 차리고 어른을 공경하는 공경의 풀이기도 했지요. 게다가 굳이 돌보지 않아도 알아서 잘 자라는 녀석이라서 더욱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개천가 산책길을 씩씩 땀흘려 걷고 있는 초로의 두 남자가 명아주 어린가지 사이에 갇혔습니다. 운동 삼매경에 굵은 땀방울이 청려장을 내친 오늘이지만 세월의 무게 더해지면 그도 어느 날엔가 청려장을 애타게 찾을도 모르겠어요.
설 명절을 앞에 두니 나이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불과 사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마을에서 환갑잔치를 여는 집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50을 넘겨 중반쯤 살다가 스르르 떠났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데 이렇게 세상을 버렸네. 어쩌누?"
안타깝다, 애잖다 말하지도 않았죠. 물론, 어느 죽음이 안타깝지 않을까요. 모두 아프고 슬픈 이별이지만 그때는 50~60의 이별은 그러려니 하는 이별이고 죽음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장수시대여서 아직 멀고 먼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삶은 내일을 보장하지 않기도 하니까요.
이랬으면 좋겠습니다.추하지 않아 곁에 벗들 모여드는 나였으면 합니다. 향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악취 풍기지 않아 객들 찾아드는 나였으면 합니다. 내 늙음의 어귀에 그랬으면 합니다.
해서, 명아주 여문 줄기 조심스레 베어다가 삶고, 다듬어 쨍한 볕에 내다 말려 마침내 어둠을 밝힌다는 "청려장" 하나 좋은 이에게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친구야? 아프지 마시게나. 사는 날까지 우리 건강하게 술도 한 잔 나누다가 그렇게 가세나!"
덕담의 말도 한마디 나누며 마음 담은 지팡이 하나 주고 싶습니다. 물론, 누구여도 좋으니 그런 선물 하나쯤 받고도 싶습니다. 그의 마음 따뜻한 온기로 오롯한 청려장 하나 내 손에 쥐어주는 그 누가 있었으면 합니다.
개천가 명아주 여린 가지에 갇힌 저들도 그러하길 빌었습니다. 늙음의 어귀가 존중 받길 빌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