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한때는 귀하신 몸이었다
안개비 가득한 날
한 손엔 바나나 송이를 또 한 손엔 술병을 들고 사내가 들어섰다. 이틀째 봄비가 내렸다. 골짜기마다 뿌옇게 안개가 들어차 경계가 무너졌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능선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골짜기와 산마루에서 이어진 능선이 서로 기대어 하나의 몸뚱이로 얽혀 있었다. 나뭇잎 하나 달지 못한 참나무는 젓가락 마냥 가로로 섰고, 함지박만 한 품을 자랑하는 소나무는 바늘처럼 뾰족한 잎사귀마다 하얀 안개를 꽂았다. 그래서일까? 안개는 움직이지 못했다. 골짜기를 기어오르지도 못했고, 산마루를 넘지도 못했다. 다만, 주저앉아 올망졸망 들어선 마을을 굽어볼 뿐이었다.
“형님, 뭐하세요? 비도 오는데 술이나 한 잔 하실래요?”
“응, 그냥저냥 있지. 그럼 그럴까?”
안개비 부슬부슬 내리던 날에 둘은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눴다. 멈춰버린 시계추처럼 모든 게 멈춘 듯 고요했다. 나무와 나무를 옮겨가며 재잘대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떼 지어 몰려가던 자동차의 행렬은 어디서 멈춰 텅 빈 길만을 남겼을까? 골짜기마다 쌓였던 잔설이 녹아 제법 요란하게 흘러가던 개울물은 또 어찌해 이렇게 조용한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새들은 짝을 찾아 목이 쉬도록 울어야 했다. 아침부터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날개를 멈추는 일은 없었다. 파닥이는 날개 짓에 버들개지는 화들짝 놀라 푸른 잎을 틔웠다. 꽃나무 가지마다 피어나는 꽃들도 그랬다. 봄이란 놈은 그렇거니 했는데 묵직하게 내려앉은 안개 때문일까? 입을 다물어 고요했고 날개를 접어 미동도 없다. 움직이지 않는 것들에 싸여 마침내 시계추마저 멈춰버린 골방에 앉아 둘은 술잔을 나눴다.
“형님, 안주 삼을 만 한 게 이것밖에 없어요. 바나나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들키면 안 될 거라도 숨기듯 뒤춤에 감추었던 바나나를 내밀었다. 부끄럼 가득한 웃음도 덤으로 얹어 내민 바나나가 노랗게 웃었다.
“그럼, 안주야 뭐면 어때? 게다가 예전엔 이 바나나가 얼마나 귀하신 몸이었는데...”
‘아뵤’ 소리를 지르며 콧등을 튕기던 이소룡처럼 노란 트레이닝 복 곱게 빼입은 바나나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랬다. 어렸을 때 바나나란 녀석은 귀하고 귀한 과일이었다. 좀처럼 맛보지 못하는 열대과일의 대명사였다. 도회지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았을 녀석인데 흙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에서야 그 대접이 오죽했을까? 일 년에 두어 번 만날까 말까 한 녀석이었다. 그나마 그 귀하신 몸을 만나게 되는 일은 집에 손님이 찾아올 때였다. 일가 중에서 가장 연장자이셨던 할머니의 공이 컸다. 멀리서 찾아오는 일가 분들은 할머니를 찾아뵈며 낯선 열대과일을 가끔 사들고 오셨는데 그중 제일 시선을 빼앗은 것은 단연 바나나였다. 노랗게 잘 익은 바나나는 킁킁 냄새를 맡으면 향긋하고 달달한 냄새가 났다. 낯선 것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처음 보는 모양에다가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어쩐지 이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 바나나야. 내 이름이라도 들어는 봤니?”
“응, 알아. 들어는 봤어!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대화라도 나누듯 바나나에 시선을 꽂고 앉아 있노라면 할머니는 이내 바나나를 하나씩 뜯어 나눠주셨다. 거만이 하늘에 닿았던 녀석을 손에 쥐고서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껍질의 촉감을 느꼈다. 손바닥 가득 들어찬 굵직한 느낌이 좋았다. 이국의 낯선 열대림이라도 걷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귀하거나 혹은 하찮거나
세상이 네 번쯤 변할 시간이 지났으니 귀한 것은 흔해 하찮은 게 되었다. 하찮았던 것은 오히려 귀해 대접을 받는다. 숙취해소에 좋다는 올갱이 해장국으로 유명세를 타는 맛 집들이 꽤나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그 올갱이라고도 하는 다슬기는 하도 흔하고 많아서 개울을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다슬기가 밟혀 으드득으드득 으깨어지기 일쑤였다. 아욱을 넣고 끓이면 그 맛이 별미여서 가끔 잡고는 했지만 돈을 싸들고서 찾을 음식은 아니었다. 어디 다슬기만의 얘기일까. 너무 귀해서 크게 한 입 베어 물지도 못하던 바나나는 이제 길거리 좌판에도 커다란 송이로 앉아 호객행위를 한다. 지난날의 영화는 전설로 회자되고 더는 귀하지 않은 몸이 되었다지만 또 누가 알까? 어쩌면 바나나란 과일을 사진이나 그림으로만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바나나에 치명적인 전염병인 파나마 병이 전 세계로 퍼져 이미 대량생산 1세대 바나나인 그로 미셸이란 품종은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지금 거리에 넘치는 바나나는 그로 미셸 품종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2세대 바나나 캐번디시다. 이 캐번디시는 파나마 병에 강한 유전적 특성을 갖고 있어서 선택되었지만 바나나 특유의 단맛이나 풍미는 그로 미셸에 못 미친다고 한다. 하긴, 단맛이 덜하고 풍미가 떨어진다느니 하는 타박을 할 일이 아니다. 파나마 병을 이기기 위해 개발된 캐번디시지만 파나마 병 같은 새로운 전염병의 출연으로 캐번디시마저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물론, 캐번디시를 대체할 새로운 3세대 바나나는 개발되지 않았다. 그다지 멀지 않은 어느 날 그림책을 펼쳐놓고서 이런 얘기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
“얘야, 이게 바나나라는 과일이야. 맛은 달고 향기가 좋았었지”
“그래요? 아빠, 저도 먹어보고 싶어요”
아이는 그림책의 바나나를 보면서 호들갑을 떨 테고, 아이의 아버지는 ‘그래, 그런 게 있었지...’ 아련한 기억 하나 붙들고서 먼 산을 바라볼 수도 있을 터였다.
오리무중 알 수가 없어
사람이 어찌 알까? 미루어 짐작을 할 뿐이다. 어제 그랬으니 오늘도 당연히 그럴 테고 내일도 당연히 그러겠지. 단정을 짓는다만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단지 오리五里에 걸쳐 안개가 끼어도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가던 걸음 멈추고서 주위를 살펴야 한다. 신경 곤두세워 둘러보아야 한다. 길은 어디로 이어졌는지, 가는 길 앞에 개울은 없는지 두드리고 따져야 한다. 종일 오락가락 안개비 흩뿌릴 때 골방에 앉아 술잔 기울임도 과히 나쁘지 않았다. 신경 곤두세워 주변을 경계하는 쉼의 시간일 수 있기에 그렇다. 무작정 앞으로 나가는 것이 최선일 수 없는 이유는 안개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에 그렇다.
바삐 날던 새들도 날개를 접고 재잘거리던 입을 다문다. 끊이지 않고 흐르는 물도 숨을 참아 소리를 죽인다. 불어가던 바람도 잠시 나뭇가지에 매달려 더는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산허리 베고 누워 시간을 보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