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하필 난 왜 허기가 졌을까?
노랑나비 한 마리 먼저 반겼으면 해
무리 지어 노랗게 핀 개나리를 보다가 문득 수제비를 생각했다. 딱히 배고플 시간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따끈하고 얼큰한 수제비가 먹고 싶었다. 솥뚜껑 뒤집어 부쳐내던 노란 지지미가 생각이 났고, 냄비에서 바글바글 끓고 있는 수제비도 떠올랐다. 이유야 알 수 없었다. 그냥 치자 물 곱게 들인 밀가루 반죽이 노란 개나리꽃과 오버랩되어서 그랬을까? 그날도 오늘처럼 오락가락 비가 내렸고 훅하고 끼쳐오는 흙냄새가 유독 강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산을 받쳐 들고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사람들은 바빴다. 때로는 바쁘게 뛰듯 걸었다. 약속시간에 늦은 남자는 우산도 없이 손바닥으로 머리를 감싸고 멀어졌다. 비에 젖는 것쯤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 덜컹이는 시외버스를 타고 고향에서 막 올라온 어머니가 그를 반길지도 모른다. 아니면 맞선 자리에서 첫눈에 반한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커피숍 커다란 창문을 통해 물끄러미 행인들을 구경하고 있는 그녀는 한껏 멋을 부렸다. 찰랑거리는 긴 머리에 어울리는 노란 리본이 달린 머리핀을 꽂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에 젖은 그가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노랑나비 한 마리 먼저 반겼으면 했다.
“아, 은경 씨. 제가 너무 늦었죠. 서둘러 온다고 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길이 너무 막히더라고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저도 조금 전에 왔는걸요. 근데 어째요. 비를 다 맞으셨네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까짓 비쯤이야...”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웃었다. 잇몸까지 드러내며 웃는 모습엔 미안함이 가득했다. 약삭빠르지 않은 얼굴이었다. 엉거주춤 자리를 잡는 그의 얼굴에 안도의 눈빛이 스쳤다.
“기다리다 가버리지나 않았는지 걱정했습니다. 이렇게 기다려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고마워요. 은경 씨”
“가다니요? 약속시간에 좀 늦을 수도 있죠. 게다가 오늘은 비까지 내리잖아요.”
둘의 대화가 이어질 때 나풀나풀 노랑나비 한 마리 주위를 맴돌았다.
있잖아, 나 수제비 먹고 싶어...
오래전 그날도 그랬다. 허기를 느꼈다. 굳이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 식욕을 느꼈다. 한상 차려진 밥상은 좀 그랬다. 간단하게 라면이라도 끓일까? 비는 추적이고 허기지지도 않은 배는 꼬르륵 유난을 떨었다. 마치 장난감 하나 얻으려고 발버둥 치는 아이의 투정 같았다. 가게 바닥에 벌렁 눕고는 발버둥 치면서 ‘엄마, 저 비행기 사줘요. 엄마, 엄마...’ 떼쓰는 아이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울며불며 난리를 치면 비행기 하나쯤은 손에 쥘 수 있다는 걸. 꼬르륵 유난을 떠는 위장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주방을 서성거리는 나를 보고 그가 물었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아님, 뭐 먹을 거라도 줄까?”
“응, 배고파! 이상하게 벌써 배가 고프네. 뱃속에 거지라도 들어앉았는지 허기지네.”
“그래,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 해줄게!”
“그러면 나 얼큰하게 수제비 좀 끓여줄래?”
얘기했을 때 그는 망설임도 없이 애호박 숭덩숭덩 썰어놓고, 청양고추도 두엇 송송 썰더니만 이남박 너른 품에 밀가루를 붓고 반죽을 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반죽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멍하니 바라만 봤다. 무슨 말이라도 나눴으면 더 좋았을까? 빗소리를 들으며 치대지는 반죽을 바라보다가 ‘비 내리면 왜 밀가루 음식이 당길까?’ 굳이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을 했다.
“그러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래 호호호”
그가 웃었다.
아, 이런 개나리 같으니라고
내리는 비를 보다 보면 떠오르는 말들이 있다. 우산이 있고, 우산 없이 뛰어가던 그가 있었다. 향이 좋은 커피와 통유리로 넓었던 이층의 창, 향기 담뿍 피워내던 프리지어 꽃다발과 잇몸 드러내며 환하게 웃던 그녀, 찰랑거리는 긴 머리와 노란 머리핀이 있었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과 노랑나비 나풀나풀 꽃처럼 날던 시간의 끝에는 이유도 알 수 없는 허기진 그가 있었다. 조각조각 떠올라 시간과 공간을 부유하다가 우수수 꽃잎으로 떨어지는 말들이었다.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공허와 끼니를 챙기고 돌아섰는데도 이내 밀려오는 배고픔은 비에 새겨진 말들이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여전히 그는 수제비가 먹고 싶었고, 시도 때도 없이 허기가 몰려와 주방을 서성인다. 냉장고 앞에서 좀처럼 떠나지 못했다. 아마 대여섯 번 열어본 냉장고에는 그의 허기를 달랠 무엇도 없었다. 알면서도 서성이다가 열어본다. 마치 처음 열어본 것처럼 구석구석 찬찬이 살피다가
“아, 이런 개나리 같으니라고...”
신경질적으로 말을 뱉고야 말았다. 그날도 개나리가 피었다. 오래전 그날에 떼 지어 날아오르던 노랑나비들처럼 개나리 꽃 무덤이 술렁거렸다. 비 내리는 날 마주하는 개나리꽃은 나비로 날았고, 허기진 배고픔으로 꼬르륵 요란을 떨었다. 송송 썰어 넣은 청양고추가 맵게 끓었다. 보글보글 달그락달그락 냄비 뚜껑을 들썩이게 하면서 수제비가 끓었다. 그는 여전히 비와 더불어 수제비와 개나리꽃을 지우지 못했는데 그녀만 없었다. 말은 그대로 남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언제나처럼 꽃은 피고 나비는 날았다. 통유리 넓은 창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렸다. 문득, 멀리 떠난 그녀가 보고 싶었다. 익숙한 샴푸 냄새와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만으로도 수제비며 청양고추의 매운맛이 생각났다. 그리운 것은 향기로 남았고 소리로 기억되었다. 비 내리는 거리는 화들짝 떨어진 꽃잎들의 무덤이었다.
물끄러미 개나리꽃 들여다보다가 ‘개나리꽃에도 꿀이 나오는가? 달고 아린 화분이 맺히는가?’ 궁금했다. 꽃잎 속 말랑한 꽃 반죽에 날벌레 두 마리 꿀이라도 찾는 것인지 정신없이 부산을 떨었다.
“너희도 허기진 몸뚱이로 몸살을 앓았니? 무에 그리 바쁘다고 날개도 접지 못했을까”
꿀을 찾아 들을 건너고 산을 넘어야만 하는 수 백 수천의 날개 짓이 허허로운 몸짓이 아니기를 바랐다. 마르지 않는 꿀샘을 핥아 배가 터지도록 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나리꽃 노란 뜰에도 꿀샘이 있는지, 알싸한 꽃가루가 넉넉하게 맺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손 빠르게 반죽을 치대다가 엄지와 검지, 중지도 불러내어 뚝뚝 반죽을 끊어 넣고 보글보글 끓여내던 그녀의 수제비가 먹고 싶었다. 오늘도 그때처럼 개나리는 피고 비도 내린다. 상에는 보글보글 봄날이 끓고, 날벌레 배때기엔 달달한 꿀이 가득 차올랐다. 허기진 배를 안고 주방을 서성이는 그가 꼬르륵 소리를 내는 봄날에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