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저 편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슴벌레를 만났다. 숲을 헤매지도 않았다. 우연한 만남이다. 노래에도 나오지 않는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었어...."
"어, 아니구나.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고 했구나. 이런...."
그러면 우연한 만남이었다는 말은 수정을 해야겠다. 이미 정해진 자연의 궤도에 그와 나의 만남은 설정되어 있었나 보다. 오랜만에 찾은 집과 흙마당을 서성이다가 방으로 들어오는데 문 앞에서 녀석이 버둥거리고 있었다. 발버둥이었다. 배를 뒤집어 가시 같은 발 여섯을 허공에 휘적거렸다. 힘 하나 없는 발둥이다. 겨우 겨우 휘적이는 몸짓이다. 들숨과 날숨으로 이어지던 숱한 날들이 저물어가는 석양의 햇살이었다. 마냥 바라만 보다가 뒤돌아 앉으며 눈물 훔치고야 마는 햇살이었다. 늙어 드디어 깊은 숨 몰아쉰다는 것은 어쩐지 허전하고 외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어지는 슬픔이야말로 정말 운명으로 정해진 마음의 길이기도 했다. 외로운 길을 가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몰아가는 길이 하필 왜 내 방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알고, 작정하고 찾은 것은 물론 아님을 모르지는 않는다. 우연한 발걸음이 거기에 있었을 뿐이다. 갈고리 발 하나하나에 걸려든 씨줄 하나와 날줄 하나가 있었을까? 그는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만들어내며 내게로 기어 왔고, 마침내 모든 것 내려놓고서 배를 치켜들고서 발버둥 쳤다. 미물도 죽으면 하늘로 가는 걸까? 바람처럼 가벼운 몸뚱이 내려놓고서 가는 그 길의 끝에는 별들이 총총 얼굴을 내밀고서 이렇게 맞아주려는 지도 궁금했다.
"꼬마야, 그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어서 오렴!"
아무도 시선 건네지 않는 숲의 한적한 곳에서 세상 가장 낮은 몸짓으로 삶을 살았었을 그였다. 종일 몸으로 기었을 숲은 얼마나 멀고 길었을까? 알지는 못하지만 어디 사람의 그것이나 녀석의 그것이 그리 다를까? 어차피 한 삶을 살다가 가는 것이야 매 한 가지였다.
나뭇가지 하나 제대로 흔들지 못하는 바람이 불었다. 미풍이다. 뭔가가 불어 가는 것은 분명한데 나무도 풀도 무엇 하나 살랑거리거나 떨지 않았다. 너무도 미미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바람은 이 땅에서 저 먼 하늘로 이어진 길이 놓았다. 그 아스라한 길 위로 바람이 불었다. 몸뚱이를 벗어난 가벼운 영혼이 바람이 되어 하늘까지 맞닿은 길을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만들어가며 걸어간다. 별들은 댕그렁댕그렁 풍경소리 정겹게 그를 맞을 것이다.
햇살 고운 날에 바람은 미풍으로 살랑거리고 깃털 같은 영혼은 바람으로 하늘을 올랐다.
아사달의 담담淡談 2017 0521: 담담은 일상의 이야기입니다. 진흙 속에서도 향기로운 꽃 피워내는 연꽃처럼, 맑은 이야기 풀어내고 싶은 소망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