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짝짝...포르투갈!

유로 2016 결승전을 보다가

by 이봄

"새벽을 깨워 호날두를 응원했다"


빈 집, 홀로 깨어 텔레비젼 앞에 앉아 있었다. 동이 트려는지 싱크대 위 쪽창은 희뿌옇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부지런한 산새는 찍찍짹짹 새벽을 준비했다. 간혹 달려가는 자동차의 경쾌한 엔진소리와 지저귀는 새들의 묘한 어울림에 새벽은 그렇게 밝아온다. 시간은 새벽 4시.

티비 앞에 앉은 나와 시원한 깡통맥주 서넛 그리고 짭쪼름한 감자과자 한 봉지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여도 괜찮지만 응원의 자리에 깡통맥주 하나가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짝짝~~~포르투갈!'

같이 박수치며 소리칠 사람이 있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홀로 응원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괴면쩍은 새벽이어서 박수도, 함성도 없었다. 마음이야 천 리를 달리고, 초개처럼 목숨도 버릴 수 있다지만 현실이야 어디 그럴까? 마음만은 그랬다. 마음에선 목이 쉬도록 함성치고, 손바닥이 얼얼하게 박수를 쳤다. 2002년의 그 어디쯤에서 상기된 얼굴로 '대한민국'을 연호하던 내가 있었다. 신명나게 열광하던 마음이 이 새벽에 되살아나 '포르투갈'을 연호했다.

리스보아의 중앙공원과 동상, 이름은 모른다.

"광팬도 특별 할 것도 없다"


사실, 유난스럽게 축구를 좋아하지도 않아서 K리그를 직접 관전한 것도 손가락으로 꼽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하물며 바다 건너 유럽에 특정한 팀을 응원하는 팬심이야 더더욱 없다. 어쩌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따위의 큰 대회에 반짝 쏠리는 말 그대로 '반짝팬' 정도의 축구사랑이 내 사랑의 정도가 맞다. 그러니 '프리미어리그'나 독일의 '분데스리가',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 등에 특정 팀이나 특정 선수를 잘 알지도 못한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몇몇의 선수와 팀을 주워들은 정도가 내 축구사랑의 전부다. 유로 2016 대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생면부지의 신생팀이 돌풍을 일으키며 8강에 올랐다, 는 기사에 이목이 쏠리고, 약자의 편에 서서 응원하는 평범함. 총인구가 30여 만 명에 지나지 않는 소국이, 게다가 인구가 일천하니 그 흔한 프로리그도 없어서 선수 개개인이 생계를 위한 직업을 따로 갖고 있다는 아이슬란드의 돌풍은 정말 돌풍이었다. 축구의 요정이 있다면 흰 설원이 아득한 아이슬란드의 눈꽃 가득 핀 골짜기에 옹기종기 살지 않을까 싶은 돌풍이었다. 아이슬란드와 웨일즈, 북아일랜드에 이르기까지 유로 2016은 동화같은 경기가 이어지고, 이변이 속출하더니 마침내 어제 새벽 결승전이 치뤄졌다. 결승전의 주인공은 주최국 프랑스와 포르투갈. 프랑스와 포르투갈이라? 편을 가르고 동질감을 불어 넣어야 경기는 흥미를 더하고, 박빙으로 일진일퇴가 거듭되면 손바닥은 땀으로 촉촉해져 긴장감이 폭발하게 된다. 편을 나눠야 그렇다. 그래, 내편을 정해야지.

몽마르뜨 언덕의 대성당


리스보아의 대성당, 까미노의 출발지점이다

"굳이 편을 나눠야만 한다면...."


포르투갈은 내게 피구의 나라에서 호날두의 나라로 기억되는 서유럽의 변방에 자리한 나라이고, 프랑스는 신민혁명과 나폴레옹, 독일의 점령과 파르티잔, 에펠탑과 몽마르뜨 언덕. 뭐, 결국은 굳이 역사는 이렇고 산업은 또 저렇다, 고 떠들 특별함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거면 족하지 않은가. 조금 더 애정을 보태자면 포르투갈의 수도는 리스본(리스보아)이고,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 중 하나라는 얘기다. 둘 중 누가 이겨도 내겐 그만이다. 수준 높은 경기와 세계적인 스타를 본다는 것으로 족한 경기라고 치부하면 된다. 하지만 난 '굳이'를 찾아 편을 가르고 한 나라를 응원했다. 진심을 담아 응원을 하고 마음을 졸였다. 마음 졸여가며 응원하게 만든 인연이 그 나라엔 있었고, 지금도 글을 쓰면서 미소짓게 한다. 인연의 힘이란 그런 거다.

순례자의 길에서 만난 순례자의 벽화

"순례자의 길에서 만난 포르투갈"


'까미노길'이라 부르는 순례자의 길은 쉽지 않은 길이다. 내가 걸은 포르투갈길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보아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 이어진 길이다. 길은 멀고 아득하다. 호사스런 관광이 아니어서 먹고 자는 것 자체가 고난이기도 하고,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길이 아니어서 더욱 고된 길이고 여정이다. 길은 멀어서 680여 Km쯤 되는 거리를 걸어야만 끝이 난다. 등에는 짐이 가득 든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야만 한다. 가다 만나는 그늘 하나에 감동하고, 펑퍼짐한 바위 하나에 감격하는 고통의 길이었다. 엉덩이 붙일 수 있는 바위 하나의 감동을 뭐라 설명할까? 발은 부르터 물집이 잡히고 어깨는 배낭의 무게로 무너질 듯이 아픈 시간을 견디며 24일을 걸었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기억에 남는 일들을 겪었다. 우연한 만남이 잊히지 않을 인연으로 남는 길을 걸었다 해야겠지.

가야할 길은 아득한데 걸음을 떼기에도 힘에 부쳐 주저 앉은 우리에게 다가와 '어디서 왔냐? 어디까지 가냐?' 묻던 촌부는 잠깐만 기다리란다. 그러고는 주차장으로 가더니 차를 몰고 왔다. 배낭을 잡아끌며 트렁크에 싣고는 '내가 태워다 주마' 말을 한다. 남은 길은 멀고 어둠은 깊었다. 서리 맞은 몰골이야 말 하기도 그렇다. 가는 도중 물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근데, 지금 가는 마을에 사시나요?' 씨익 웃으며 아니란다. 아까 출발한 카페가 있던 마을이 본인이 사는 동네란다. 아, 그랬구나. 낯선 이방인을 위해 부러 밤길을 달려 도움을 주는 거구나. 가던 길에 만난 게 아니라니...

늘, 도처에서 친절함을 뛰어넘는 과분한 감동을 만났다. 일일이 얘기하기에도 버거운 인연이 거기에 있었다. 포르투갈, 포르투갈 사람들. 지금도 고마워 감동하게 되는 곳, 그래서 나는 포르투갈을 응원했고 호날두를 응원했다. 아마 오래도록 포르투갈은 내게 그렇게 남을 것 같다.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짝짝~~~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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