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잘 지냈지
어제는 하루 종일 어둠 컴컴 스산하더니 결국은 요란스레 비가 내렸습니다.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새벽은 은근슬쩍 엉덩이 한 짝 들이밀어 새벽을 지나서 저녁을 맞는구나 싶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억지로 눌러야만 했던 슬픔이었을까? 오후 서너 시 , 돌풍이 불고 먹장구름 몰려들더니 요란스레 비가 내렸지요. 처마에 매달아두었던 포대들이 마당을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고사된 엄나무 굵은 둥치는 결국 부러져서 길게 누웠습니다. 삿된 기운을 몰아낸다는 엄나무 날카로운 가시로도 미련처럼 불어 가는 바람 앞에서는 속수무책 소용이 없었나 봅니다. 부끄러움을 챙기지도 못하고 하얀 속살로 누웠습니다. 우당탕탕 시끄럽게 몰려다니던 바람은 오간데 없습니다. 가을비라고 얘기하기가 부끄러웠습니다. 한여름 날의 장맛비처럼 사나웠던 비였습니다. 창문을 닫고 따뜻하게 덥혀진 이불을 파고 들어가 너는 내려라. 나는 여기에 누워 비 내리는 늦가을이나 지켜보련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산을 펼쳐 들고서 마당이며 뒤란을 둘러봐야만 했습니다.
비닐하우스는 찢겨 날아가지 않았나 돌아봐야 했고, 어디 열린 창문은 없는지 아니면, 바람에 헐거워진 것들은 없는지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가을비가 그렇게 요란을 떨면서 내리던 밤이 지나고 오늘입니다.
언제 그랬냐고 정색을 합니다.
"밤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낯빛도 바꾸지 않고 시치미를 뗍니다. 얼굴이 보통 두꺼운 게 아닙니다. 글쎄요? 난 아무것도 몰라요 하면서 뒤돌아 앉았습니다. 밤새 내린 비로 축축하게 젖었던 흙마당은 꾸덕꾸덕 얼었습니다. 봄비는 한 번 내릴 때마다 꽃 한 송이씩 피워낸다 하고, 가을비는 한 번 내릴 때마다 겨울을 한 발작씩 끌어당긴다 했던가요. 계절의 경계가 마당 복판에 왔습니다. 경계의 이쪽은 가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는 가을이고, 경계의 저쪽은 긴 수염 쓸어내리며 헛기침하는 동장군의 겨울입니다.
밤새 안녕이라고 여기저기 안부를 묻고 싶은 아침입니다. "안녕? 밤새 탈없이 잘 지냈지?"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잠은 잘 잤는지 궁금했는데 오늘이야 오죽하겠어. 시끄러운 빗소리에 혹여 잠은 설치지 않았는지 궁금도 하고, 나이 들었어도 소녀 같은 그대여서 무서움에 이불 파고들어 사시나무 떨듯 뜬 눈으로 불안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신경을 쓴다는 건 즐거운 마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대를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입가에 미소 짓게 합니다. 별일은 없는지 걱정이 되고 신경이 쓰이는데 즐겁습니다. 안부를 묻고 물어주는 마음은 행복한 고민입니다. 오늘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지 알람처럼 날아들던 그대의 안부가 없습니다.
"지금 뭐해? 난 커피 마시려던 참이야"
그러면 남자는 입가에 가득 미소 지으면서 이렇게 답장을 보냅니다.
"나도 지금 막 커피 마시려는 중인데. 우리 잠시 수다나 떨까?"
습관처럼 기다려지는 너의 안부를 기다립니다. 기다림이 행복한 남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