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금이다 말은 말아줘
말言이란 참 묘해서 실체도 없는 녀석이 힘은 또 얼마나 센지 몰라. 말 한마디에 산을 옮기고 바다를 마르게 할 수도 있어. 지나가는 말 하나 툭 던졌는데 누구는 그 말에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때로 누구는 무릎을 꺾어 포기의 쓴 맛을 보기도 하지.
말이란 세 치 혀로 만들어내는 꽃이기도 하고, 심장을 찌르는 비수가 되기도 하는 거야. 들어줬으면 하는 상대를 향해 말을 뱉었다고 해서 모든 말들이 살아남아 그에게로 가는 것도 아니야.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은 그저 공허한 날숨의 비뚤어진 몸짓에 불과한 거야. 진심이 없는데 아무리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를 보탠다고 해서 무슨 힘이 있겠고 향기가 있겠어. 시끄러워 어지러운 잡음일 뿐이야.
또 그렇지. 나는 진심을 담았어도 들어줄 그가 원치 않는 말이라면 결국 가다가다가 길을 잃고 헤매고야 말 거야. 분명 또박또박 눌러쓴 수취인의 주소가 있다 한들 뭣 하겠어. 받아줄 그가 없다면 결국 말은 텅 빈 공간을 떠돌다가 때로는 비로 내리고, 때로 낙엽이 되어 들길을 떠돌 거야. 말하는 나와 들어줄 네가 마음이 통했을 때 나의 숨은 비로소 생명을 얻어 살아나는 거지. 떠돌지 않아도 좋을 말을 하고 싶어. 그래서 오래도록 살아남아 잎을 틔우고 줄기를 키워내 마침내 향기롭게 꽃으로 피는 그런 말.
뭔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내는 말이어야 할 이유는 없어. 거창한 말이야 나보다 거창한 사람들이 쏟아내겠지. 대단한 사람은 또 대단한 말을 할 터야. 나는 다만 기억해도 그만이고, 잊는다고 해도 서운하지 않을 말이면 그만이야. 빵집을 지나다 보면 굳이 맡으려 하지 않아도 빵 굽는 냄새에 정신을 빼앗기듯 자연스레 말 하나 떠올려 내가 생각났으면 좋겠어.
그런 거 있잖아. 바글바글 끓고 있는 청국장을 보다가 문득 내가 떠오른다 거나. 얼큰한 라면 후루룩 후룩 먹다가 코끝 얼큰하게 나를 떠올렸으면 좋겠어.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인상으로 기억되는 건 그다지 원하지 않아. 바람이 불 때, 느닷없이 비가 올 때, 아니면 붕어빵 호호 불어가며 먹다가 입천장을 데었을 때도 괜찮아. 그냥 그럴 때 나를 떠올려 줘.
"밥은 먹었니? 그래, 아직이면 나랑 밥 먹자"
안부 삼아 건네는 말이면 충분해. 칼칼한 수제비라도 같이 먹고 싶어. 콧등에 땀 몇 방울 맺혔을 때 콧등의 땀 훔쳐주는 나였으면 좋겠어. 가끔 너에게 안부를 묻고, 밥 먹자 얘기를 할게. 너도 가끔 그렇게 얘기해 줘. 침묵은 금이다 얘기를 하지만 말을 해야 네 마음을 알 것 같아. 말없이 입 다물다가 꼭 말을 해야만 아니? 얼토당토않는 말은 말아줘. 침묵이 금이라면 마음 담은 말은 다이아몬드 일 수 있어
"잘 지내지? 밥은 먹었고?"
"응, 잘 지내지. 밥이야 뭐...."
"그래, 그럼 우리 같이 밥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