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초 당초 같은 겨울

청양고추 썰어 넣듯 밀려와

by 이봄

오늘을 말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맵다'야. 따뜻한 이불속에서 꼼지락꼼지락 게으름을 피우다가 문을 열고 나섰는데 훅하고 매운 냄새가 나더라고.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눈부시게 찬란해서 어쩌면 따뜻한 온기 마당 가득 퍼졌을 거야 지레짐작했었는데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거지. 그런 거 있잖아. 맑은 육수에다 파 송송 계란 탁, 만두 네댓 개 바글바글 끓이다가 청양고추 하나 곱게 다져 툭하고 넣은 국은 빨간 국물이 아니어서 담백, 시원, 깔끔하겠지 짐작하는 거. 그러다가 눈물 콧물 제대로 쏟는 거야.

오늘이 그랬어. 폐부를 파고드는 바람은 청양고추 됫박으로 썰어 넣고 프라이팬에다 달달 볶은 바람이 불었어. 매캐한 연기도 피어나고 불맛을 더한 바람은 어찌나 매웠는지 모르겠어. 말로는 괜찮아, 괜찮아 아양을 떠는 햇살이 곱고, 맑은 하늘은 어쩐지 시원한 바람을 보낼 것만 같았는데, 뒤에 숨긴 미소가 음흉함을 더했다고 해야겠지. 게으름뱅이와 부지런 떠는 계절이 한바탕 신경질적인 조우를 했어. 서릿발 대걱거리는 만남이었어. 부딪히는 시선에서 불꽃이 튀었지.

얼얼하고 코끝 찡한 날씨에 설탕 한 숟가락, 우유 한 컵을 뿌렸어. 매운맛을 중화시키는 데에는 설탕의 달달함이나 우유의 고소함이 힘을 발휘한다고 하잖아. 몰려드는 성난 계절에 까짓 한 숟가락의 설탕이나 우유가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될까 마는 잠시의 숨구멍 같은 위로는 되겠다 싶었어.

언 손에 호호 입김 불어가며 '그대 사랑해' 적어놓고서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거. 매워 얼얼한 입안에 달달한 음료 털어 넣는 위무의 몸짓인 거지. 송곳니 들어내고 달려드는 계절 앞에 그나마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건 따뜻한 화로 하나 품에 품어서 가능한 것처럼, 때로 코끝 찡한 마음 달래주는 건 가슴 한편에 자리한 너 있어서가 아닐까 해. 엊그제 내린 눈에 마음을 적었어. 고초 당초 맵다지만 시집살이만 할까 한다지만 달려드는 북풍한설도 그만큼 맵고 쓸쓸해서 설탕을 부르고 우유를 소환했어. 매캐하게 타닥이던 가을이 갔구나 했더니 설상가상 더 모진 놈이 고초 당초 겨울로 달려드는 날, 난 너의 어깨에 기대어 매운 날들 건너려 해.

"있지, 나 널 사랑해!"

귀에 딱지가 않도록 얘기하고 싶어. 이 겨울에 못내 아쉬운 건 그렇게 떠들 수 있는 그대가 없어서 문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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