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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타닥타닥 꽃불로 타고

물레나물 고운 꽃이 매케하게 타오르는 6월. 세상이 뜨겁다.

by 이봄

꽃은 불꽃으로 타닥였다


짧아서 오히려 화려한 시간이 있다. 기다림은 길었고 긴 기다림으로 쌓인 그리움은 그만큼 짙었지.

"당신을 사랑해요!"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었다지만 허락된 시간은 너무도 짧아서 침을 꼴각 삼키듯 목구멍으로 숨어버렸다고 하더라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찌 그 그리움을 모른다 할까? 말하지 마라. 가슴에 맺힌 응어리 어찌 몇 되지도 않는 말들로 풀고 설명하랴. 오랜 기다림으로 너의 목은 이미 쉬었으니 탁하고 갈라져서 피울음 될지도 모른다.

다만, 세상을 떠도는 말들은 시끄럽고 어지럽다. 눈을 유혹하는 몸짓은 현란하여 번잡하다. 무엇을 담고 무엇을 버리랴. 잡으려는 손은 이미 갈피를 잃었고, 담으려는 눈은 충혈되어 침침하다. 길은 복잡해서 도처에 덫이 놓이고 함정은 개미굴처럼 사방팔방에 널렸는지도 모르겠다. 더는 무엇을 하지 마라. 말도 말고 몸짓도 마라. 일 년의 기다림은 단 하루, 오작교의 해후, 주어진 시간은 찰나의 깜박임으로 가벼운데 더 무엇을 하랴.

노랗게 응어리진 꽃잎 다섯, 수레바퀴 살이되어 세상을 굴러 길이 이어진 마을마다, 발길 닿는 동네마다 기웃거려 서성인다. 혹여라도 그대 계시는지, 발없는 말이라도 풍문으로 머무는지. 오시는 걸음은 성기고, 가는 발걸음은 총총하다. 산천과 초목을 넘나들며 희롱하는 그대여서 너는 물레바퀴 꾸며들고 질긴 실이라도 뽑았겠지. 서리서리 묶은 실로 길을 열고 다리도 놓았겠다. 오시거든 마중하고, 가시거든 부복하여 삼백예순다섯 날 돌이 되어도 좋다, 하겠거니. 서리서리 풀어헤친 그리움, 찰나의 해후.

여름 날의 고단한 뙤약볕에서 타닥이며 꽃이 피었다. 도르륵도르륵 바람개비 돌면 연기는 골짜기를 타고 산마루를 넘었다. 소나무 우거진 숲을 지나고 참나무 늘어선 능선을 넘어 멀리로 멀리로 불어갔다. 타닥이는 소리는 요란했고,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꽃은 정오의 햇살을 무색케 했다. 뜨거운 마음, 기다림의 몸짓들, 쌓여 푸른 숙성, 가라앉은 세월의 발효, 멍으로 피어난 선혈..... 말을 말아야 하는 세월이 꽃불로 뜨겁다. 타닥이는 소리는 요란해서 십 리 멀리 어디선가 요란할 터다.


물레나물 노란꽃이 벌겋게 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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