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고양이로다

가르릉 가르릉 소리로 먼저 왔다

by 이봄

겨울은 북풍을 타고 담을 넘었고 봄은 남풍을 앞세워 가지끝에 앉았다. 바쁠 것 하나 없는 것들은 지레 맷돌만한 엉덩짝을 들이밀고서 좀처럼 떠나려하지 않았다. 습관으로 굳어진 몸짓은 말을 만들고 사람들도 으레 고만한 때가 되면 말을 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입시한파라거나 꽃샘추위 따위의 말들이 그런 말에 속하는 것들 이었다. 하기는 그런 말들로 자위하는 것 말고 뾰족한 방법도 없다. 가지 않겠다 발버둥치는 겨울을 뭣으로 쫓아낼 수 있을까? 답도 없는 질문에는 그저 시간이 약이었고 딴청이 정답인 것을.


종일 비가 내리고 그것도 모자라 날을 이어 비가 내렸다. 채 물러나지 못한 겨울이 마당 곳곳에 남아 풀죽은 얼굴로 궁시렁거리는 날에 내리는 비였다. 언 땅 틈바구니로 빗물은 스밀 터였고, 마침내 동면에서 깨어나 기지개 켜는 움들은 물줄기 하나마다 꿈틀거리는 봄의 탄력을 맛 볼 일이었다. 활의 시위처럼 긴장된 봄은 한 순간에 터져나와 대지를 뒤덮고 하늘을 점령할 터였다. 뭉기적이던 겨울은 더는 엉덩이 붙여 헛기침 할 처지가 아니었다. 봄비 내리는 날 마당에선 겨울과 봄의 긴장된 조우가 있었다.

기승을 부리던 겨울의 복판에서 오월이가 떠났다. 열여섯을 꼬박 채운 오월이는 늙은 고양이다.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 축제로 들썩이던 봄날에 오월이를 만났고, 불과 보름 전쯤의 그날까지 오월이는 월드컵둥이로, 냥이의 고고함은 진작 개에게 줘버린 개냥이로 동고동락 행복했었다.

사쁜사쁜 소리도 없이 다가와 부벼대던 몸짓은 때로 부담스럽기도 했다지만 애교 만점의 오월이였다. 어린 날의 오월이나 늙고 병든 오월이나 간절하게 바라보던 눈짓과 끝도 없는 애교는 봄날의 햇살을 보는 듯 간지러웠다.

손등에 내려앉아 애벌레 꿈틀거리듯 간질거리는 햇살 한 줌과 보드랍게 비벼대는 고양이의 털은 어쩐지 같은 거였다. 바라는 거 하나 없이 더 주고 싶어 안달인 엄마의 안타까움도 덩달아 묻어나고 말릴 수도 없는 나는 또 그렇게 안타깝게 졸게 되는 봄날이 꽃처럼 피었다.


가르릉 가르릉 끊길듯 이어지는 가슴앓이는 오월이의 사랑고백이었다. 좋아서, 행복해서 어쩌지 못하는 마음은 양지바른 담장마다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새겼다. 천 년 만 년 지워지지 않을 암각화 쪼고 새겨 그려넣듯 품에 잠든 오월이는 소리 하나 깊게 마음에 새겼다. 지난 가을 나는 말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먼 하늘 어디쯤 반짝이는 별이 됐으면 좋겠다 머리를 긁어주며 말을 했었다. 영원으로 이어질 목숨은 어디에도 없으니 너도 가고 나도 가겠지 했다. 더는 청춘의 뜨거움으로 담장을 넘고 달 고운 날에 하늘 높게 뛰어오르지 못하거든 이쯤에서 고이 접어도 좋겠다 했었다.

오늘 이틀을 이어 내리던 비가 그치고 간지러운 햇살 빼꼼이 얼굴을 내밀 때 그런 생각을 햇다. 이왕 단풍 고운 가을에 떠나지 못했으니 생강나무며 조팝나무 하얀꽃 지천으로 피는 날에 꽃처럼 떠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미련은 끝도 없는 욕심이 맞다. 이랬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말들 시렁에 곶감 영글듯 매달리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 구름을 비집고 봄볕 한 줌 마당에서 졸고, 해바라기로 흥에 겹던 오월이도 봄볕에 누워 졸고 있다.

그래, 봄날은 고양이로세! 나는 주절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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