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꽃이 피었다

보라빛 꽃송이 떼지어 피었다

by 이봄

오랑캐꽃이 피었다. 기껏해야 손가락만한 이파리에 보라빛 꽃송이 앙증맞은 녀석인데 이름은 왜 이렇게 사납게 지었는지 모를 일이다.

북방의 오랑캐들, 꽃 피는 봄날 흙먼지로 달려들어 그랬다 하기도 하고, 꽃의 모양새가 오랑캐의 머리채를 닮아서 그렇게 불렀다 하기도 하는데 무엇이 됐든, 먼 옛날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으면 꽃이름 하나에도 오랑캐를 가져다 붙였을까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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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꽃, 병아리꽃, 장수꽃, 제비꽃, 씨름꽃.... 작은 꽃 하나에 이름이 많기도 하다. 그만큼 익숙하고 친근한 꽃이라는 얘기이기도 하겠지. 명태란 녀석 하나에도 온갖 이름을 붙여 밥상에 올리듯 이 작은 꽃도 그렇다.

다양한 질환의 약으로 쓰이기도 하고, 어린 순은 데쳐 나물로도 먹었다 하니 온갖 이름으로 부를 만도 하다. 돌담 밑 양지바른 곳에 줄지어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봄임을 실감하던 날들은 덤으로 얻는 추억이다.

고상한 양반네야 고상함에 어울리는 꽃, 매화를 바라보며 이른 봄을 찬양하고 마중했겠지만 민초들의 굽은 봄은 땅바닥에 달라붙어 피어나는 작은 들꽃들이 열었을 터였다. 굽어 어쩔 수 없이 바라보게 되는 땅바닥에 무리지어 봄은 피었다. 냉이며 꽃다지, 오랑캐꽃에 민들레꽃 납작 업드려 피었다.


제비 돌아올 때 핀다고 해서 제비꽃이란 이름을 얻었다고도 했다. 마당 구석 구석에 제비꽃 피는 날에 나는 거꾸로 제비 머물던 강남으로 간다. 섬을 징검다리 삼아 날던 제비의 길을 따라 남녘의 섬으로 간다. 어쩐지 역행의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보통의 것들에 섞이지 못한 부유의 기분도 든다. 언저리를 겉돌다 끝내 바다에 다다르지 못한 연어는 어느 물길을 거슬러 오를까. 옷을 챙기고 짐을 싸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며칠 바람처럼 떠돌다 돌아올 길인데 유랑의 먼 길 떠나는 것처럼 가슴이 뛰는 건 무슨 연유인지. 새벽, 고향의 냄새 폐부 가득 담고서 길을 나서야 겠다. 어쩐지 그래야만 강물을 거슬러 올라 돌아올 것만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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