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가 운다

너울너울 파도로 운다

by 이봄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어가는 길목에는 어김없이 파도가 치고, 나뭇가지는 굿판 위의 무당처럼 펄쩍펄쩍 춤을 췄다. 늘어진 가지마다 한껏 매달린 신명이 있다던가? 땀이라도 한 바가지 쏟아내듯 춤사위는 거칠고 맹렬했다. 굿판처럼 바람이 불고 옹기종기 모여 선 사람들은 종일 바람에 쓸려다니다가 어느 돌담 밑 낙엽처럼 모여 바람을 피했다. 송악산 낮은 등줄기에선 소나무 떼지어 춤을 추고, 한 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섬은 업드려 있었다. 상동과 하동을 잇는 길에는 점점이 박힌 사람들 행복한 얼굴로 섬에 스며들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성긴 가시처럼 뾰족했다. 곧추세운 창검처럼 서로를 경계하듯 번뜩이는 눈엔 무심함이 빛나고, 양 팔 벌려 만들어진 동심원 안에 몸을 가뒀다. 철옹성에 웅크린 장수의 몸짓이 그랬을까?

20180416_202352.jpg

섬은 작고 조그마해서 바람 하나 피할 언덕이 없었고, 내리쬐는 햇살 가려줄 그늘도 없었다. 바람이 점령한 섬에는 키가 큰 나무조차 한 그루 없었다. 섬은 바다에 업드려 큰 섬 제주를 그리워했다. 굽은 등줄기 언덕을 만들고 바람은 날마다 등줄기를 오르내리며 놀았다. 그 조그만 섬에 뾰족히 가시로 솟았던 사람들 강물처럼 넘실거리는 보리밭을 거닐며 감탄의 만들 쏟아내더니 하나씩 둘씩 섬으로 스며 가시를 잘랐다.

양 팔 벌려 만들었던 철옹성은 무너지고 이웃한 걸음들은 언제부턴가 박자를 맞춰 걸었고, 마주치는 눈에는 짐짓 미소로 응답했다. 섬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언덕 하나, 품 넓은 그늘조차 없었지만 스며들어 하나로 만들었다. 현무암 곰보돌들 내리는 빗방울 하나 남김없이 품에 품듯 사람들은 섬이 되었고, 바람으로 나부꼈다.

떼지어 사람이 불었다. 청보리는 몰려가는 물결마다 초록의 물감 흩뿌리며 바람되고, 강물되고, 마침내 한 뼘 바다로 출렁거렸다. 바다는 울었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섬과 섬은 그리움만 쌓았다. 그 사이에서 바다는 울었다. 푸른 바다와 초록의 섬은 너울너울 춤사위로 날마다 울었다. 처음엔다가 울었고, 나중엔 푸른 등줄기 보리들이 울었다.


4월, 가파도엔 청보리가 운다. 그리운 마음 청보리로 피었는가? 섬이 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