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벽의 변신도 그렇지
예전 광고카피에서 그랬던가요?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던 말이 있었지요. 맞아요. 여자의 변신은 죄가 없지요.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이야 타고난 본능인데 그게 어찌 죄가 되겠어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면서 아름다워지려 했다면 그 피해만큼은 죄가 되겠지만 단지 어제의 그와 오늘의 그가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죄를 물을 수는 없겠죠.
어디 사람만 그런가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깃털을 다듬고 혼인색으로 치장하면서 온갖 교태로 상대를 유혹하기에 여념이 없지요. 짧은 사랑의 시기가 되면 변신은 천지간에 차고 넘치기 이를데 없기도 하구요. 아름답다거나 혹은, 용맹해 보인다거나 하는 치장은 사랑을 쟁취해 내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느냐의 절대적 본능에 닿아있다는 말이기도 해요. 그러니 예뻐지려는 욕망은 여자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고, 비단 여자만의 문제도 아니구요. 좀 더 남자답게 보이고 싶어하는 남자들의 욕구도 결국은 같은 얘기니까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벽화작업을 했어요. 낮은 시멘트벽은 그림자 없이 햇살에 알몸으로 누웠으니 벽에 붙은 나라고 무슨 뽀족한 수가 있을 라구요. 기껏해야 챙 넓은 벙거지모자 눌러쓰고 작업을 했죠. 한참을 그렇게 작업하고 있는데 두 여자가 등 뒤에 서서 말을 걸어오는 거예요.
"선생님, 그림이 정말 예뻐요. 여기 이 그림들 다 선생님이 작업하신 건가요?"
"아, 네. 제가 그렸습니다만... 그림이 괜찮나요?"
"예, 정말 좋아요. 예뻐서 맘에 쏙 들어요. 힘드시죠? 전에 저도 벽화봉사로 그림을 그려봤는데요 정말 힘들더라구요"
"네, 그렇죠. 벽화가 남이 볼 땐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정말 중노동이에요"
일행 중 한 명은 우리나라 사람이었고, 다른 한 명은 노랑머리 외국인 이었는데 그렇게 잠시 대화를 하다가 말을 했지요.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그림들도 있어요. 구경 한 번 하시고 가세요"
둘은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하던 작업을 했어요. 잠시 뒤 그림을 둘러보고 나온 그들과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노랑머리 외국인 아가씨가 얘기를 하는거예요. 외국인 특유의 어눌한 억양으로
"아저씨, 아저씨 정말 최고예요!"
엄지척 손을 치켜들면서요. 그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정말 좋았나 보네 하면서 으쓱해지는 기분도 들었지요.
맞아요. 여자의 변신이 무죄이듯 시멘트 낡은 벽의 변신도 무죄예요. 가파도를 찾는 관광객에게 조그만 추억이라도 남겨줄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변신을 해야겠죠. 사진 한 장으로 남는 추억이라지만 재밌고 행복한 추억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름도 국적도 모르는 여인네의 엄지척이 오늘도 내게 행복으로 남았어요.
"아저씨, 아저씨 정말 최고예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