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누구는 꽃이 되고 누구는 잡초가 되고

by 이봄

슬리퍼 찍찍 끌면서 마당에 나섰습니다. 손에는 가위 하나와 뾰족한 쇠갈고리를 들었지요. 이름은 모릅니다. 갯바위에 붙은 홍합이나 부착성 패류를 따는 도구였다는 건 압니다. 낡은 창고에서 발견되는 낡은 도구들은 십 중 팔구는 어업에 관련된 도구들입니다. 가파도가 섬이었지 하게 되는 물증이지요. 그에 반해 호미라든가 하는 농기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낮은 언덕의 섬은 보이는 땅덩어리가 모두 밭인데도 그렇습니다. 농사에 기대어 살 수 없었다는 얘기겠죠.

아, 말이 샛길로 빠졌습니다. 마당을 어슬렁거리다가 눈에 띄는 녀석은 아침을 황망하게 맞는 운 없는 녀석입니다. 손에 들린 가위는 멈칫거림도 없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야 맙니다. 밤새 안녕이라고 녀석의 아침은 오늘이 끝입니다. 잘려진 몸뚱이 이리 잘리고 저리 붙여집니다. 순전히 제 맘에 들어야만 하는 포즈를 강요 받고는 한 장의 사진으로 목숨을 대신하고야 말죠.

쇠비름도 요렇게 보면 앙증맞은 꽃도 피워요. 사실, 채송화도 쇠비름과의 꽃이거든요. 말하자면 사촌인 거지요.

오늘도 그랬습니다. 매일 서성이는 마당인데 특별한 무엇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두어 평의 텃밭엔 옥수수 열 댓 개 너풀거리며 자라고, 그 자투리엔 오이가 한 팔 길이는 넉넉하게 줄기를 뻗었습니다. 노란 꽃송이도 두엇 달렸구요. 익숙한 풍경 멀뚱이 바라보다가 땅바닥을 점령한 쇠비름을 봤습니다. 섬이거나, 육지이거나 쇠비름은 여전히 우왁스럽게도 자라고, 쉽사리 제압할 수도 없습니다. 아프리카에 출생지를 둔 녀석이라고 하는데 사람들 곁에서 번성합니다. 농경을 매개로 전 지구를 점령한 풀이 쇠비름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수 만 년 농부들의 골칫거리로 오늘도 땅바닥을 온몸으로 움켜쥐고서 가파도의 여름을 맞고 있었습니다. 이로울 것 없는 들풀을 잡초라고 하죠. 그 대표적인 녀석이 아마도 쇠비름일 겁니다. 뿌리째 뽑혀 뙤약볕에 며칠을 두어도 다시 빗방울 하나에 몸을 일으키는 끈질김이 쇠비름에는 있습니다. 쇠심줄 같은 생명입니다.

개미 한 마리 보이시나요? 적의 연합군 사령관입니다^^

그림으로 남길 녀석들 찾다가 심드렁해지면 손에든 쇠갈고리 호미 삼아 잡초를 뽑았습니다. 촌놈의 혈관엔 눈에 거슬리는 잡초를 보면 전투력이 상승하는 뭔가가 흐르나봅니다. 뽑고 또 뽑고, 끝나지 않을 전쟁입니다. 포연 가득한 전장에 갈고리 하나 어설프게 든 노병은 수시로 흙마당을 정찰하고, 때로 피튀는 전투를 치룹니다. 일방적인 저의 승리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녀석들과의 전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사실, 잡초야 달아나거나 피할 방법이 없으니 속수무책 뿌리를 뽑힌다지만, 녀석을 보금자리 삼던 연합군의 반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땅에는 게릴라전술을 구사하는 개미들이 물고, 뜯고, 씹었습니다. 어느 제약회사의 광고가 무색했지요. 개미만 있을까요? 하늘엔 최신예 전투기라도 된듯 모기들의 편대공격이 매섭거든요. 유혈이 낭자한 전투를 치루다 백기를 들었습니다.

담배 한 개비 피워 물고서 휴전을 제안하고야 말았습니다. 여기, 여기까지만 넘어오지 마라! 그러면 나도 더는 갈고리 앞세워 너희를 공격하지 않으마 절충안을 제시했지요. 그러마!, 하더군요. 근데 이렇게 물러난다면 내 물린 어깨며 복숭아뼈는 너무 억울하다 싶었지요. 노획품 없는 전쟁은 앙꼬 없는 찐빵이거든요. 가위를 빼어들고서 한 마디 했습니다.

"그래도 오늘 난 한 장은 사진이 필요해! 그러니 오늘 만큼은 누군가의 희생을 피할 수 없어!"

단호하고도 매서운 일갈이었을까요? 꼬리를 내리고 갈기를 접더군요. 그렇게 얻은 사진입니다. 어렵게 얻었지요? 쇠비름 노란꽃은 그래서 귀한 전리품입니다. 전리품 하나 손에 들고서 만면의 웃음 짓다가 깊은 숨 내쉬기도 했습니다. 잡초라고 구박할 일만은 아니었지요. 그랬거든요. 술 한 잔 거나하게 취해 흔들리는 몸 주체하지 못하던 날에

"에혀, 이 잡초같은 인생아~~~!" 한탄도 했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내일이면 또 쇠갈고리 손에 들고 어슬렁거리겠지만 오늘은 휴전을 했습니다. 잡초도 두고 보면 꽃이다 싶은 심정으로 멀찌감치 물러앉아 담배를 피웠습니다. 오늘따라 담배맛이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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