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조차 없길 바랐지요
그런 날들이 있었습니다.
후미진 골목길 넘나들며 잊혀지기를
바라던 날들입니다.
이름도 잊혀지고 마침내 살아왔던
모든 기억들 잊고 싶은 만큼
남들도 그렇게 잊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림자 하나 남기고 싶지 않은
날들을 살았지요.
폰에 저장된 사진을 봤습니다.
눈에 띄지도 않을 괭이밥 하나 거기에 있었지요.
노란꽃 보일 듯 말 듯
하도 작아서 초점도 흐릿하고야 마는
녀석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녀석을 바라보는데 눈에 띄는 하나가 있더군요.
너무도 선명히 찍힌 그림자 하나 보았습니다.
어찌나 강열하던지 어느 게 그림자고,
어느 게 실체인지 헷갈리게 그림자는 짙고,
색깔마저 선명하더군요.
놀랍다는 말 외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림자가 싫었습니다.
그림자 투영되는 밝음이 어쩐지
내게 쏟아지는 조롱인 것도 같았고, 단지
비아냥으로 느껴지기도 했지요.
밴댕이 속좁은 나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늘 좋은 나무 애써 찾아 건너던
징검다리 같은 시간임엔 분명합니다.
없었으면 했고, 잊혀졌으면 하던 날들입니다.
오늘도 대단한 반전이 있다 싶지도
않았지만 그 짙은 그림자는 부러웠습니다.
정수리에 햇살 이고 있다면
짧지만 실체가 어지러울 그림자 하나
짙고 선명하게 드리우겠죠.
부럽기도 하고 그랬으면 하는 마음도 듭니다.
모르겠습니다.
솔찍히 말하면 모르겠단 말이 맞습니다.
'너 잘났다!' 얘기하는 친구녀석이 있고.
'널 믿어!'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사실 모르겠습니다.
그림자 없었으면 하던 세월도 길고,
그림자 하나 짙게 드리우고 싶어!, 얘기를
한들 뜻대로 그 품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다만 부럽구나 하게 되네요.
맞아요. 뭐 하나 가진 것도 없지만
달랑 자존심 높히 치켜들고
살았구나 하게 됩니다.
잘 난 것 없으니 오히려 가시 날카롭게
세우고서 성벽도 튼튼하게 쌓게 되지요.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모진 말 쏟아내는 작자들은 대게 그렇습니다.
저 먼저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애시당초 상처겠다 싶은 것들 처음부터
곁에 오지도 못하게 하지요.
다르지 않았습니다.
묻게 되네요.
짙지는 않아도 '나 여기 있어요?'하는
그림자 하나 만들어도 될까요?
누구 하나 넉넉하게 품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정오의 불볕에 여기도 그림자 있어요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없었으면 하던 것, 있었으면 하게 되네요.
욕심이지요. 욕심을 품게 되네요.
괭이밥 하나 짐짓 딴청 피우며
피워내는 꽃송이도 있는데
하물며 저라고요.
향기도 바라지 않아요.
화려한 외모도 또한 그래요.
그저 나도 여기 있어요 하는 정도의
그림자라면 행복할 듯 싶어요.
그래도 될까요?
그림자 조그맣게 드리우고
당신께 말 할까요?
"오시어요?당신!
여기 그림자 하나 만들었어요!"
아,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괭이밥 노란꽃 나도 피웠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