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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달에도 봄은 오는가
천 근의 몸뚱이
섬에선 팔다리마다 서너 근씩 이끼가 자란다
by
이봄
Jun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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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어둠이 내렸을 때
바람은 여전히 거칠었고,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빗방울은
창을 흠씬 적시기에 충분했다.
조그만 틈바구니라도 보일라 치면
들짐승 떼로 달려들듯 성난 이빨을 드러냈다.
사납게 섬은 울었다.
달려드는 것들은 야수의 울부짖음으로 울고,
납작 엎드린 섬은 야수의 울부짖음에 울었다.
모든 것은 어둠의 장막을 사이에 두고
길고 지루하게 이어졌다.
뒤섞여 바람이 불었고, 가뜩이나 숨 가쁜
바람을 채찍질 하며 빗방울은 밤새 포악했다.
어둠에 숨어 숨죽여야 하는 것들은
다만 새벽이 밝기만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너와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에도
비는 사납게 내렸다.
자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잘 자요. 당신! 내일 봐요?"
작별의 말을 남기고 잠을 청하려 했을 때
섬은 언제 낯빛을 바꿨는지
파도소리만 자작자작 부서지고 있었다.
사납게 달려들던 빗줄기는 사그라들어
자취를 감췄고, 바람은 꼬리접은 개처럼
골목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내일은 배가 뜨려나 모르겠네?
잡생각에 빠졌을 때 바다가 울었다.
뿌우 뿌우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다가 운다.
마치 새끼를 잃고 우는 어미소의 울음처럼
음매 음매애, 뿌우 뿌우우
어둠 가득한 바다와
바다보다 더 어두운 하늘 사이로 난
물길에서 어미소가 울고 바다가 울었다.
안개였다.
안개 자욱한 바다는 등대마다
고동을 울렸다. 등대의 불빛은 안개를
뚫지 못했고, 안개는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불빛을 집어삼켰다.
손가락 마디 하나쯤 되는 시간에
섬은 안개에 갇혔다.
비바람 몰려간 자리마다 이번엔 안개가
기어올라와 엉덩이를 뭉기적거렸다.
송아지는 안개에 길을 잃었고, 어미소는
목이 쉬도록 바다를 향에 울었다.
우는 바다에 동동 섬 둘,
서로를 바라보며 충혈된 눈을 꿈뻑거릴 뿐
미동 없는 바다에 뿌우 뿌우우
어미소만 홀로 깨어 밤을 밝혔다.
"어느새 안개가 끼었구나! 참 변덕스럽네"
중얼거리고 만다.
정말 그랬다. 섬의 날씨는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길 밥 먹듯 한다.
팥죽 끓듯 한다는 그 변덕이 섬의 날씨다.
끓는 팥죽에 동동 떠있는 새알심 두 개,
어쩌면 바다에 떠 있는 가파도와 마라도였다.
꿈을 꿨다.
맑은 냇가에 낭창이는 버드나무 시원하게
그늘 드리우고, 그늘 사이로 징검다리 하나
흐르는 냇물에 발목을 담그고 있었지.
송글송글 이마에 땀방울 달고서
한껏 베어 묶은 꼴 서너 단 지게에 지고
나는 논둑을 걸어 집으로 갔다.
지게 작대기 기분 좋게 박자를 맞추고,
어느 틈에 풀냄새 맡은 소들은 긴 혓바닥
빼어물고 침도 한 됫박 흘리고 있었다.
날 푸른 작두에다 베어온 꼴
한움큼씩 드리밀면
서걱서걱 풀냄새 풍기며 잘도 잘렸다.
부엌에선 연신 밥 끓는 소리 쉬익쉬익
새어나고, 젊은 어미는 행주에다 물기 닦으며
"날도 더운데 고생했네. 밥 다 됐어!
우물가에서 좀 씻으렴...."
하고 돌아서는데 더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의 꼬리 붙잡으려다 잠은 달아나고,
이미 동튼 바다에는 안개도 사라졌다.
빨갛고 하얀 등대 멀뚱히 서서
쉰 목청을 가다듬고 있었다.
새벽이 오는 길에 행복한 꿈 달콤하게도
꾸고 일어났는데 몸이 천 근이다.
비쩍 말라 더는 마를 것도 없겠다 싶은
몸뚱이가 이렇게 무거울 수도 있구나 싶게
젖은 솜뭉치처럼 늘어져 무거웠다.
끓는 팥죽의 새알심에 앉았으니
몸뚱이에 이런 흔적을 남기는구나 싶었다.
비바람 사납다가 이내 안개 쌓이니
몸뚱이마다 퍼런 이끼가 자랐다.
갯바위 가득 따개비 달라붙어 자라듯
섬에선 늘어진 팔다리에 서너 근씩
이끼가 자라고 무기력이 달라붙었다.
귀찮은 아침이 거머리같이 따라붙는다.
움직이는 것도, 씻는 것도, 꼬르르
아우성치는 명치쯤 어디 투닥투닥
두드리면서도 끝내 먹는 것도 귀찮은
아침이 징그럽게 달라붙었다.
어이하랴?
이 아침 먹고 사는 것도 천 근인데
너희 둘 알아서 해라!
발가락 꼼지락거려 물을 긷든,
손가락 종종거려 불을 지피던 알아서 해라.
천 근의 몸뚱이 질질 끌듯 일으키고서야
손과 발 맞잡아 주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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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
보글보글 찌개가 끓고 양념같은 이야기들 곁들이는 것. 삶은 그런 거야. 글 송송 캘리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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