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따위 괜찮아

정말이야, 마음엔 더한 것도 부는 걸

by 이봄

기상상황이 실시간으로 날아드는 세상이라서 그만큼의 근심이 날아들고, 안부를 묻게 된다. 손에 든 스마트폰에는 연신 재난안전본부에서 보낸 무시무시한 경계의 말들이 칼춤을 춘다. 휘번뜩이는 말과 말이 부딪쳐 불꽃이 튀고, 단 일 초식의 검풍으로 무언가는 추풍낙엽으로 떨어져 생을 마감했다. 멀쩡히 길을 걷다가 불귀의 객이 되고 마는 거다. 안전이 제일이고 두 번 세 번 돌아봄이 맞다. 미리 미리 대비하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귀따갑게 얘기하고 또 얘기해야만 하는 게 옳은데 어쩐지 난 심드렁하니 귀찮다. 하루에도 몇 번 좁은 골목을 오가며 태풍이 어쩌고, 비가 저쩌고 나발을 불었다. 이틀째인가? 조그만 섬 가파도에도 요란을 떨고 부산을 떨었다. 재채기 한 번 제대로 하면 날아갈 것만 같은 섬이니 오히려 그만큼 대비를 해야겠지. 방파제며 테트라포트 나래비를 섰어도 자연의 위력 앞에서야 종잇장에 불과하니까. 모르지 않는다. 오늘도 두 번의 안전문자와 한 번의 재난방송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창문의 덜컹거림은 조금 더 요란함을 더했다. 높은 하늘가 뽀얀 얼굴로 떠 있던 구름도 모습을 감췄다. 바람이 분다. 조금은 시끄럽고 성난 목소리로 섬에 바람이 분다. 발톱을 세워 분다고 해도 여전히 섬에 부는 바람은 마른 바람이다. 간간이 햇살 비추는 하늘만 보자면 태풍의 꼬리는 커녕 그림자도 볼 수가 없다. 귀 닫고 실눈만 뜨고 보는 섬은 오히려 예쁜 하늘과 살랑거리는 들풀로 해서 기분 좋은 풍경이다.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물씬 풍긴다 하는 게 오늘 섬의 얼굴이다. 덜컹덜컹 쉬익 쉭 소리만 빼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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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길게 뻗어 두 발 포개고 누웠다. 며칠 전 사진 한 장을 찍었고, 그때도 태풍이 온다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웅성거렸다. 예보에 불과한 소문은 그저 오른 귀로 들어가 왼 귀로 빠지는 소리에 지나지 않않다.

"그래? 태풍이 온다고? 오면 말지 뭐..."

호들갑 떨 일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창문 꼭꼭 걸어잠그고 들어앉은 나야 무에 걱정일까 싶다. 오히려 싱거운 하늘과 맹숭맹숭 바람이 같잖다. 떠르르하게 비가 내렸으면 했다. 바람은 지축을 흔들고, 파도는 방파제를 타고 넘어 축대 밑에 이르러 허연 이빨을 드러냈으면 했다. 말 그대로 큰 바람 아니던가? 물폭탄 두어 개쯤 섬이 떠나가라 터뜨리고, 들짐승 그것처럼 사납게 할퀴고 갈 발톱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래봐야 일 년 두어 번 아니 많아야 서너 번 태풍이 온다. 세상은 그 이름만으로 난리굿에 난장이 된다. 왜 안 그럴까 싶다만 바람일 뿐이고 비일 뿐이다. 게다가 하늘이 하는 일이니 뭘 어쩌겠어?, 하고야 만다. 태풍이 아니어도, 장마가 아니어도 마음엔 하루에도 몇 번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가슴 아리게 바람이 불고, 마음 저미는 비가 내린다. 그리워서 파도가 치고, 외로워서 비가 내렸다. 때로는 폭풍으로 불다 잦아들기를 하루에도 몇 번이고 되풀이 한다. 가슴을 쓸어내리다 둥글둥글 깎여나간 갯바위 하나 보게 된다. 시퍼렇게 멍울진 파도와 온몸으로 울어지친 갯바위가 가슴에서 자라고 있었다. 가뜩이나 좁아터진 가슴팍에서 바람이 일고 파도가 쳤다. 일 년 서너 번의 폭풍으로 야단을 떨지 마라. 하루에도 몇 번 태풍이 일었다가 눈보라도 치는 게 마음이다. 방파제 무너지면 주변 몇몇의 집이 물에 잠기고, 누구는 삶의 터전을 잃어 망연자실 울부짖겠지만 나는 마음이 무너지면 세상을 잃고, 우주를 잃고야 만다. 각자의 몫만큼 세상을 짊어지고, 짊어진 만큼 아파할 일이다. 다만, 나는 다리 겹쳐 편히 꼬고 누워 바람을 본다. 사납게 울부짖는 바람이야 태풍의 몫이니 최선을 다해 울어라. 비는 품지 않았으니 마른바람 들풀들 머리를 감기고, 본섬으로 치달아 오름을 씻기고, 한라산 깊은 골 골고루 넘나들어 청명함 남기고서 미련도 없이 가라. 너무 야단법석 요란을 남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름이 너무 무거우면 그것도 과히 보기에 좋지 않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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